태아가 인간의 모습으로 자라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임신과정의 몇 안되는 즐거움중 하나다. 알고자 하면 언제든 알 수 있는 생물 지식이지만 임신을 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된다고나 할까. 오늘 알게 된 새로운 지식은 인간의 오감중 가장 먼저 발달하는 것이 촉각이라는 것이다. 임신 7주 정도에 입주변부터 촉각이 발달한다. 오감중 1번이 촉각인데다가 촉각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달하는 것도 아니고 입에서부터 전신으로 확장되는 사실이 자못 흥미롭다.
촉각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중 어느하나 중요하지 않은 감각은 없다만 촉각이야말로 가장 원초적 감각이 아닌가 싶다. 낯선 세상에 태어나서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상태에서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에게, 생애 처음 느끼는 환대는 피부를 통해 전해진다. 포옹이나 입맞춤이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은 이런 태초의 사랑을 촉각을 통해 느꼈기 때문 아닐까. 가장 먼저 발달해서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애정을 담당하는 감각이라니 정말 낭만적이다.
태아의 발생순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것이 부질없는 짓일 테지만 촉각이 먼저 발달한다는 것은 그만큼 살아가는 데에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중 어느 하나가 없더라도 살 수 있지만 촉각이 없다면 금세 위험에 빠지고 말것이다. 추위나 더위도 못 느낄테고 더 나가서는 뜨거운 걸 만져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위험 상황이 아니더라도 따뜻한 봄바람이 부는 것도, 새로 세탁한 이불의 바스락 거리는 감촉도, 수영장에서 물이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각도 알 수 없다면 삶이 얼마나 단조로워질까. 삶을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는 많은 순간들이 촉각과 관련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포옹이나 친구의 다독임에서 힘을 얻어본 사람으로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나의 뱃속의 태아가 커가는 동안 사실상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는데, 태아의 발달과정을 읽어 나가는 과정이 나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얘는 열심히도 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이 퍽 감동적이다. 어서 인간이 되어서 짠 하고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