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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진 Dec 27. 2020

내가 잠시 살았던 집

가족


내가 잠시 살았던 집


            우리 집은 삼 남매인데 모두 다 우량아로 태어났다. 누나가 우량아로 태어나니 자연스럽게 나도 우량아가 되었고 내가 우량아라 동생도 자연스럽게 더 큰 우량아(4.5kg)가 되었다. 어려서는 그게 그냥 그렇게 태어난 줄 알았다. 누나와 나는 자연분만의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엄마는 버티셨고 내 동생은 아예 제왕절개로 날을 맞춰 태어났다. 어릴 적 할머니는 어떤 선녀를 모시는 용하다는 무당에게 날을 받아 왔고 꽤 디테일한 시간까지 맞춰서 엄마는 우리를 낳았다. 어이없을 정도로 미개해 보일지도 모른다. 나도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친척 형의 결혼식날 고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무당 이야기를 하시며 알게 되었다. 용하다는 무당은 아직도 인산인해를 방불케 할 정도로 유명하다 한다. 처음 들었을 때 남자 어른들과 동생은 엄마를 조금 미친 사람처럼 쳐다봤지만 나는 눈물이 났다. 본인의 살점을 갈아 넣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을 엄마는 어떻게든 삼켜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대단한 용기와 헌신은 아직 얼굴도 보지 못 한 우리들의 앞으로의 안녕을 위함 아니 었는가. 나로서는 흉내도 내질 못할 일이고 나는 모든 어머니들이 정말로 애틋하고 대단하고 사랑스럽다.


 중학교 2학년 성장통으로 학교를 쉬어야 할 정도로 아팠던 날이 있었다. 그 날 이후 나의 양쪽 무릎에는 튼 살이 5센티 미터 정도 생겼고 그 해만 17cm가 자랐다. 그런 튼살이 엄마 배에는 빗살무늬 토기처럼 사정없이 일정하게 수도 없이 나있다. 주변에서 미스코리아 나가라고 할 정도로 이뻤던 우리 엄마에게 우리는 뭐였을까. 지금 엄마의 복부는 거적때기처럼 축 늘어지고 옛날에 홀쭉했던 배는 어느새 태산만 해졌다. 이제는 복대 없이는 외출도 하지 못하고 아무리 관리를 한다 하여도 돌이 킬 수 없는 그 배를 보고 있으면 너무 죄스럽고 눈물이 난다.


 휴일이 길었던 엄마는 오랜만에 낮잠을 잤다. 거실에 누워 살짝 코를 고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쭈굴쭈굴한 얼굴을 손으로 펴보기도 하고 개니 이마를 툭 한번 쳐보기도 한다. 나는 가끔 엄마의 배를 배게 삼아 눕곤 한다.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심리적 안정감을 선사해주는 나만의 배게가 애틋하고 좋다. 그러다 보면 배속에서 꾸르륵꾸르륵 하고 소리가 나는데 나는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배고파??"

"아니"

"그럼 똥 마려??"

...(이 세끼가)


눈을 감고 생각한다. 내가 잠시 여기에 살았었는데... 음 이 소리가 낯설지 않아. 맞아 이런 소리였던 것 같아. 태아는 4개월이면 기억이란 걸 할 수 있게 된다 던데 내 기억력의 한계는 도대체 어디까지지.... 후 나란 남자 조금 무서워지는걸. 뭐 이런 생각을 하다 우쭐해지다가 또 문뜩 우울해진다.


 사람의 인생을 사계절로 비유하자면 나는 쨍한 여름의 한창일 것이고 엄마는 가을의 한 중턱에 서 계실 것이다. 추수를 끝내고 이제는 알록달록한 색동 이불을 따뜻하게 덮어야 할 시기인데 엄마는 아침마다 두꺼운 철문을 가볍게 밀며 일을 나가신다. 엄마의 출근은 오로지 생계유지를 위함이고 내가 버는 수익은 단지 자급자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언저리에 있다. 엄마라고 좋은 옷 좋은 집 욕심 없는 게 아닐 건데 난 이 부분이 못내 항상 아쉽다. 의욕과 욕심이 없는 아들로 태어난 게 죄스럽다. 주식으로 치자면 우량주라 여겨 평생을 올인했지만 항상 저가만 치는 버리기엔 시간이 너무 지나 버린 비련 한 상품이다. 자식과 부모의 사이를 이런 삭막한 개념으로 설명하는 게 참으로 한심한 일이지만 이렇게라도 체찍질 하지 않으면 나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꼴 보자고 생사의 고통을 삭히며 나를 낳아 주신 게 아닌데....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 항시 부담을 가지며 사는 건 아니지만 엄마의 태산 같은 산을 보고 있자면 후 나도 모르게 이리된다.


엄마의 따뜻해야 할 가을에 시기에 이불을 걷어차버린 불효자식이 아닌지 하고 속으로 끙끙거리고 있으면 엄마라는 위대한 직함은 정말이지 아들의 속을 훤히 보는 초능력이라도 있는 건지 아니면 잠깐 잠꼬대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나지막하게 말씀하신다.


"으응..... 아니야...."


어머니 제 마음 아닌 게 아닌데.....


엄친아는 되어 드리지 못했지만 내년에도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여행경비가 잘 마련되면 좋겠다. 엄마가 그토록 바라시는 평범한 삶에게도 한발자국 다가갔으면 좋겠다.


누나를 가진 후부터는 엄마는 항상 이렇게 사진을 찍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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