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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나도 가고 싶어 '제주 한 달 살기' 1편

<일부러 늦게 쓰는 아주 사적인 여행기>

by 지니 서


사회생활 13년 차.

이 회사에 입사한 지 9년 차.

아기 낳은 지 8년 차.

아기 낳고 출산휴가 3개월.

그 이후 바로 복직했던 그 해를 떠올리면,

하루 종일 키보드 위에 올려진 시큰거리던 손목,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만 눌러도 부러질 듯 아팠던 손가락 관절,

신호등이 깜빡거려도 뛰지 못하고,

지하철 환승 구간에서 느릿느릿 걷다가 사람들에게 치이고,

우리 아기 우는 소리 동네 어귀까지 들려와도

눈물을 훔치며 출근하던, 모든 것이 엉망이던 그 해 여름.

워킹맘으로 사는 동안 억울함과 서러움이 차오르면,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해에 쓰겠다 다짐했던 육아휴직을 생각하며 버티고 또 버텼다.


파워 J인 나는, 육아휴직 1년이 시작하기도 전에

여러 계획들을 세우며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던 것이

'제주 한 달 살기'였다.


직장인으로 사는 동안에는, 절대 해볼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너나없이 '제주 한 달 살기'를 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부러웠기 때문이다.


20대에 일주일을 혼자 뚜벅이로 여행하며,

'나 자신으로 사는 방법'을 알게 해 준 고마운 '제주'

인생의 많은 터닝포인트들마다 위로하듯 제주가 떠올랐고

그때마다 많은 추억들과 함께 제주는 시간을 선물했었다.


그 '제주'라는 섬에 잠시나마 머물 '내 집'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내 아이'와 함께라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홀로 상상할 때마다 함박웃음을 지었다.


물론 그 계획의 단계는 약간의 실망 그리고 현실타협의 연속이기는 했다.

그 계획의 흐름을 따라가 보자.


1. 언제 갈 것인가

제주의 지독한 여름과 겨울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여름에 가면 실외 활동에 제약이 걸릴 것이고, 겨울에 가면 바람과 눈 때문에 고생만 한바탕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한 달 살기 숙소들은 대부분 '공과금'을 별도로 부과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름 냉방비'와 '겨울 난방비'를 굳이 부담하면서까지 그 계절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여름과 겨울을 많이 선택해서 '한 달 살기 성수기'라고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아이들 '방학기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반항의 아이콘.

그깟 학교? 에라이 모르겠다. 결석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학교를 고려치 않고 가장 좋은 시기를 떠올려보았다.

너무 덥지 않으면서 제주의 그 푸른 바다에서 해수욕도 할 수 있으려면

언제 가야 할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자전거로 제주 한 바퀴 했던 8월의 불타는 태양과 태풍.

애매하게 눈이 내리지도 꽃이 피지도 않았던 2월의 강추위.

해가 지기 시작하면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가 시작되던 11월 매서운 바람, 건조함.

제주는 5월만 되어도 너무 더웠던 것 같은데.....



결론은 9월이었다.

제주의 9월은 여전히 뜨거워 제주 푸른 바다에서의 해수욕이 가능할 것 같았고,

아주 뜨거운 더위는 한풀 꺾였을 것으로 예상했다.

10월은 때때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해수욕은 어려울 것 로 생각했다.

에어컨비와 난방비도 줄일 수 있고, 9월은 태풍이 끝난 시기이기도 했다.

제주의 로망은 해수욕이지


2. 디에 머물 것인가

기왕 제주에 가는데 '아파트'에 묵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단층짜리 주택일 텐데 '여자와 아이' 약한 두 존재로

낯선 시골 주택에 머무는 것은 꽤 겁이 나는 일이었다.

외지에서 온 사람은 바로 티가 날 테고, 과장하자면 '표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많은 곳은 그래서 위험하고, 한적한 곳은 또 그것대로 위험할 것 같았다.


집을 인터넷으로만 보고 실제로 보진 못한 채로

한 달간 머물 곳을 골라야 했기 때문에

바닷가 시골집을 고르되, 필요할 때 도움 청할 곳이 있는 곳을 찾으려 했다.


마당은 그림의 떡, 제주 모기는 살벌하다


3. 누구와 갈 것인가

몇 개의 숙소를 마음에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아이가 둘 있는 여동생에게 제주 살이에 대해 얘길 했더니

혼자선 엄두가 안 나지만 언니가 간다면, 아이 둘과 함께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다.

나도 잠시 고민했지만, 예산도 줄일 수 있고 아이들에게도 아주 행복한 추억이 될 것 같아서

여동생과 조카 둘과도 함께 하기로 했다. 둘째 조카는 이제 막 돌을 넘긴 아기였다.

이제는 일행이 여자 둘에 아이 셋이 되었다.


4. 제주 내 지역 고르기

제주는 사실 어디든 예쁘다.

사면의 바다가 서로 다른 매력으로 우위를 결정할 수 없을 정도다.

바다만 예쁜가. 아니다. 소문난 오름뿐 아니라 동네의 작은 오름들도 모두 감탄스럽다.

바다랑 오름만 예쁜가. 아니다. 동네 어귀의 갈대밭도 숲 속 휴양림도 모두 신이 주신 선물이라 느껴질 만큼 아름답다.

아무데나 잠시 앉아도 그림이다
오름, 고양이 그리고 하입뽀이


그래서인지 지역을 고른다는 것이 의외로 어려웠다.

한 지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쉬워 일정 중간에 집을 옮길까도 고민해 볼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 셋의 짐.......... 포기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우선 도심인 제주시(북)와 서귀포시(남)는 제외하고

성산(동)과 애월과 협재(서)를 기준으로

해수욕장이 있고, 마트와 도서관이 너무 멀지 않은 을 고민했다.




5. 가장 중요한 예산!

해수욕장이 가까운 바닷가의 시골집

안전한 지역 내에 있어야 하고

너무 붐비지도 한적하지도 않아야 한다.

방이 최소 2개 이상 이어야 하고

부엌과 세탁기, 건조기를 갖추고 있어야 했다.


제주의 한 달 살기 숙소는 부엌이 딸리면, 세탁기가 있으면, 건조기까지 있으면...

조건이 붙을 때마다 금액이 불어났다.


까다로운 나의 조건을 통과한 한 달 살기 숙소는

1층엔 집주인(아이들이 있는 가족)이 살고, 2층을 임대하는 곳이었다.

나름 깔끔하고 조건이 좋은 만큼, 한 달 금액이 800만원에 육박했다.

800만원은 너무 부담스럽고, 다시 숙소를 찾을 엄두는 나지 않고

그래서 결국 기간을 줄여, 한 달이 아닌 보름을 알차게 보내보기로 결정을 했다.

자 이제 숙소를 예약했으니

진짜로 시작이다, 제주 보름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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