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명현 May 16. 2016

송중기는 평범한 외모에 속한다.

그리고 그건 이 시대의 비극이다.

 

태양의 후예는 그렇게 CF 킹이 되었다. 햇빛 쏟아지는 곳 어디서나 미스터 송의 얼굴이...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끝났지만 송중기 열풍은 이제 시작인 것 같다. 요즘 계속 하루 종일 송중기와 함께 하고 있다.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갑자기 무더워진 날씨에 시원한 간식을 사러 가는 길에도 퇴근길 장보러 마트에 가서도 심지어 주말에 들른 서점에서도 온통 송중기 일색이다. 이거야 원, 텔레비전 채널은 보기 싫으면 돌리면 된다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혹은 마트 계산대에서 줄을 서는 동안에 꼼짝없이 송중기 얼굴을 계속 봐야 한다. 내가 혹시 저 송씨 아저씨랑 같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난 <태양의 후예>를 재밌게 봤기 때문에 주연배우인 송중기가 여기저기 보이는 것에 큰 불만은 없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비현실성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대위 한 명을 위해서 헬기가 뜬다거나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차 안에서 수퍼맨처럼 애인을 구한다거나 심정지가 왔는데도 바로 다음날 작전에 투입된다거나 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왜냐? 드라마니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죽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이건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공통이다. <24>에서 CTU 요원 잭 바우어는 알몸상태로 모진 고문을 받다가 위액까지 다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뛰쳐나가 대통령을 구한다. <크리미널 마인드>의 하치 팀장은 폭탄이 터져서 다른 사람 다 죽어나가는데 혼자만 깔끔하게 얼굴 옆선에 피 몇 방울 묻힌 채 팀을 계속 지휘한다. 본 시리즈의 맷 데이먼은 또 어떤가? 총을 맞고 바다에 떨어졌는데도 거뜬히 살아남아 유럽 전역을 휘젓고 다닌다. 셜록 홈즈는 시즌 2에서 분명 추락사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튕겨져 올라와 시즌 3를 종횡무진 활약한다. 제임스 본드는 불사신의 원조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도 항상 옷은 멋있게 차려 입으며 총알이 빗발치든 피가 낭자하든 폼생폼사의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귀에 거슬리는 아주 비현실적인 대사가 하나 있었다. 6회 초반부에서 사진촬영을 하러 간 부자의 대화가 그것이다. 아버지가 먼저 운을 뗀다. “네 엄마 말대로 판검사 할 일이지, 요즘 세상에 군인을 누가 알아준다고…” 그러자 아들이 응수한다. “머리만 좋으면 모를까, 운동신경까지 탁월하니 판검사는 아깝지 말입니다.” 


 여기서 유시진 대위의 아버지가 의미한 건 아마도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 정권 시절에 출세의 의미로서의 육사인 것 같다. 그때는 대통령 하려면 육사 나와야 한다는 공식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인 유시진 대위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는 좀 더 놓은 곳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출세의 시대가 아니라 하루하루 죽느냐 사느냐 복불복의 생존의 시대이기 때문에 요즘 세상에 누가 군인을 알아주느냐? 는 말에 이렇게 설명해 보겠다. 


아버지 세대의 군인이 출세를 위한 선택이었다면 아들 세대의 군인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서울대 인문계열에 충분히 들어갈 성적인데 사관학교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 문과여서 죄송합니다 라는 뜻의 ‘문송합니다’ 말까지 유행하는 요즘 어설픈 문과 나와 수백장의 이력서를 쓰기보다는 군인이라는 확실한 직업이 낫다는 것이다. 하긴 사무실 임대료도 내기 힘든 변호사들이 즐비한 마당에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군인의 길이 법조인의 길보다 훨씬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아이비 리그에 충분히 들어갈 성적의 미국 유학생들이나 교포들 중에서도 매브니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경우가 꽤 있다. Military Accessions Vital to the National Interest 의 약자인 MAVNI 는 2009년 처음 실행된 외국인 모병 프로그램인데 실행 첫 해 전체 외국인 지원자 중 한국인 비율이 무려 30%로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뉴욕에서만 50여명 선발에 수백 명의 한인이 몰려들어서 일찌감치 조기마감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어차피 공부 마치고 한국 돌아와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헬조선이니 미 합중국 군대에 들어가 몸과 마음을 다 바치겠다는 그들을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토록 군대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한국이든 미국이든 넘쳐나는 만큼 들어가서도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다. 예전엔 육사 나오면 소령, 중령까진 무난했다고 하는데 요즘엔 그것도 아니라고 한다. 위관급에서 영관급 올라가는 것을 정자 전쟁에 비유하기도 하고 로또 당첨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뭘 그렇게까지… 하고 말하려다가 성적은 기본이요, 집안도 좋아야 하고 외모까지 출중해야 하는 엄연한 현실 앞에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 입을 다문 적이 있다.     


 업무 때문에 육군 정훈공보실 갔다가 깜짝 놀랬다. 순간 연예기획사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어서다. 흡사 군복 컨셉으로 데뷔하기 직전의 아이돌 그룹을 보는 것 같아 얼떨떨했다. 해군 정훈공보실 가서는 더 깜짝 놀랬다. 거긴 더 잘생겼다. 친하게 지내게 된 육군 중령에게 저녁 식사 자리에서 술의 힘을 빌어 속으로 생각했던 말을 그냥 꺼냈다.     


 “이런 얘기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해군 정훈공보실 분들이 더 핸섬하신 것 같아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육군은 싸니까요. 해군은 배가 필요하고 공군은 비행기가 필요하지만 육군은 그냥 걸으면 되잖아요.” 헐… 잘생긴 데다가 유머 감각까지 뛰어나다니. 유시진 대위가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갑툭튀 캐릭터가 아니었다. 내친 김에 질문을 하나 더 했다. “정훈공보실 들어오는데 외모 중요하죠?”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뭔 소리야? 본인이 잘생겼다는 말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그러다 말을 돌렸다. “아, 의장대는 공식 기준이 있어요. 거긴 신장 180cm 이상부터 지원 가능해요.” 기준 자체가 180 이상이라니… 178 센티미터 송중기는 애초에 지원불가다.  


 비현실적인 설정이 가득한 이 드라마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 송중기가 맡은 유시진 대위의 외모라 가슴 한 켠이 시리고 씁쓸하다. 이 땅의 수많은 대위, 소령들은 다들 유시진 대위 이상으로 잘생겼다. 그래, 정훈공보실이나 의장대는 일반 기업으로 치면 홍보, 마케팅 내지는 안내 데스크 정도 되니까 외모가 중요하다고 치자. 삽질하는 공병대 부사관까지 잘생긴 걸 보고 짜증이 났다. 잘생긴 건 당신 잘못이 아니지만 도대체 우리가 얼마나 치열한 세상을 살고 있는 건지… 불과 한 세대 전에는 박정희같이 키작은 육사 출신도 있었고 전두환같이 대머리 육사 출신도 있었는데 말이다.     


 청년 실업률은 매번 사상 최고 기록을 갱신한다. 비싼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는 학생 수가 2015년 기준 327만 명, 대출 규모는 약 15조원에 달한다. 이 중 2만 명 정도는 원금상환을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데 이런 상황으로 내몰리는 일반 학교에 비해 전액 국비 사관학교는 얼마나 천국 같은 곳인가? 더군다나 생도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라고 용돈 40만원 정도가 매달 나온다. 40만원이면 편의점 알바를 67시간 뛰어야 손에 넣을 수 있는 돈이다. 날마다 하루 3시간, 주5일 이상 근무해야 겨우 얻게 되는 액수란 뜻이다.     


 요즘 시대 누가 군인을 알아주느냐고? 그렇다면 군대고시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노량진의 한 대형 학원에서는 ‘ROTC 부사관 단기합격 패키지’라는 강의를 개설했다. 의경 모집 경쟁률 26.4대 1, 육군 기술행정병 경쟁률 40대 1인 상황에서 과외 공부는 필수다. 1998년 여생도 입교가 허용된 이후 사관학교 경쟁률은 지속적으로 올라가 2016년도에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육사 여생도 경쟁률은 49.5대 1, 해사는 60대 1, 공사는 57.4대 1이다. 남생도 경쟁률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그래도 19.1대 1이다. 붙는 사람보다 떨어지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이렇게 지원자가 넘치는데 당신이 인사권자여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성적에 집안에 외모까지 보지 않겠는가?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 2년차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Appearance contributes to reality. 외모와 현실은 관련성이 많다. 공무원의 외모 수준이 계속 올라간다는 건 그만큼 경제가 어렵다는 걸 반영하는 것 같아 슬프다. 아주 많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