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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Nov 29. 2023

백마리 개, 반대의 반대

21. 개식용 반대의 건너편

동물이었다. 개도 그런 동물 중 하나였다. 지금은 아니다. 사람의 호감도에 따라 동물의 급을 매겼다. 호감도가 높으면 먹지 못한다. 반대로 호감도가 낮으면 먹을 수 있는가? 역차별이라 반갑지 않다.




개식용 금지가 뜨겁다. 개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백 마리를 돌보는 소장으로서 반갑다. 나 또한 소망했던 일이다. 허나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전개에 상당히 불편해졌다.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개는 사람의 사랑을 먹고사는 동물이기에 식용으로 적당하지 않다고 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바램은 그저 소망일 뿐, 이런 논리가 장기적으로 개에게 유리할리 없다. 동물보호에서 외치던 동물은 개로 한정적이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동물에 대한 애정은 당연하다. 유기견이라는 특이한 동물을 마주하면 애정은 집착이 된다. 나중에 다루겠지만 모든 개를 살리겠다는 의견에도 반대한다. 집착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 개를 살리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동물을 위한 일이 목표였는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개식용에 반대하지 않는다. 찬성도 아니다. 동그라미를 그리고 반대편에 동그라미가 아닌 도형을 그려보자. 수도 없이 많은 도형이 가능하다. 반대의 반대가 꼭 찬성인 것은 아니다. 보다 의미 있는 반대였으면 했다.


불편한 이야기는 적기 싫다. 우유를 위해 희생되는 송아지, 산채로 기계에 넣어지는 닭을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단지 그들이 식용으로서 죽는 이유가 개가 아니란 이유에 반대한다. 돈 많은 부모를 두지 못해 내 인생이 꼬였다고 말하는 못난 이들의 주장에도 반대한다.


보다 나은 이유여야 했다. 애견인은 꾸준히 증가 추세이다. 개식용 금지라는 키워드에 동의를 얻을 실사용자가 대다수란 의미이다. 고작 이런 이유만으로 설득이 가능했던 것이다. 공감대 형성에 별다른 노력이 필요 없는 손쉬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전 세계가 동참한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개식용 금지는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수많은 동물 중에서 우리가 직접 경험한 몇 안 되는 동물이 개다. 너도나도 개에 대해 알고 있다. 사람 이외의 동물을 거론할 때 부수적인 설명이 필요 없는 동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개를 통해 사람 외적 존재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첫 번째이길 바랬다. 동물보호법에서 열거하는 기본적인 사항들을 꼼꼼하게 따져 묻는 첫 번째 동물이길 소망했다. 적당한 물과 밥을 제공하고, 사람들이 학대로 인지하는 선상에서 통제받는 동물이길 소원했다. 그러나 식용으로 키워지지 않으면 연관 문제들도 해결될 것이란 말에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다.


느렸을 것이다. 동물보호라는 애매모호한 기준을 확고한 사회적 규칙으로 다듬어 나가기에는 오래 걸렸을 것이다. 사람의 기호에 따라 식용과 비식용으로 나눈 업적이 사회적 규칙이 될 리 없다. 반발하는 이가 나 하나뿐이더라도 상관없다. 개가 아닌 다른 동물이 계속 고통받는 이유가 우리의 기호 때문이라고 나는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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