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여행하고 돌아오니 한 달이 지나가 버렸다
3월 한 달은 태국여행(16박 17일) 돌아와서 다음 목적지인 뉴질랜드 여행을 준비하느라, 그리고 15박 16일 여행하고, 또 우리나라로 돌아와서는 사람들 만나느라 바쁘게 보냈다. 그렇게 바삐 보내고 정신 차려 보니 4월.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갈 수가 없다.
- 보름살이 in 뉴질랜드
여행은 좋았다. 뉴질랜드도 땅이 커서 남섬, 북섬 모두 둘러보려면 적어도 한 달은 필요하다는데, 퇴사한 직후 끊은 티켓이어서 그냥 보름 정도만 여행을 계획하고 떠났더니 약간은 아쉬운 듯 다음을 기약하며 15박 16일이 마무리되었다.
언제, 어떤 일자리를 구할지도 모르고 당장 수입이 없으니 최대한 여행 경비를 아끼려고 첫 3박을 제외하고는 호텔 대신 호스텔에 묵었다. 틈만 나면 혼자 해외로 나다녔던 예전에는 8인실, 16인실에도 잘 묵었건만, 이번에는 1-2인실에 있으면서도 시설이 너무나 열악해서 '헉'소리가 나오기는 했다.
퇴사를 할 때는 돈도 필요 없고 그냥 "내 시간, 내 마음대로 쓰고 싶다"라고 외치며 떠났는데, 막상 돈 없이 여행하려니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그런가, 그냥 사람이 간사해서 그런가... 괜히 살짝 후회되는 마음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건만.
- 전 회사 동료와의 만남
여행 갔다 돌아오니까 전 회사 동료들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았다. 자신감 있는 상황은 아니니 잠깐 망설이기는 했지만 몇몇과는 모임을 가졌다. "3월까지 버텨서 이런저런 보너스들 받고 나가지...", "조금만 참지..." 등 안타까운 마음에 동료들이 한 말(내 낯빛이 그렇게 안 좋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에 잠깐 또 휘청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매일 울고, 죽을 것 같을 정도였으니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며 스스로 위로했다.
- 'who am I?'
여행 후 돌아와서는 책을 읽으며 자아탐색의 시간을 갖고 있다. 특히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탐구 중이다(지난 5개월간도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보다 '본격적으로' 탐구를 시작했다). 자기 계발 서적을 읽으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책을 따라 해 보다가 다음 단계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지 않길래 취업/재취업 바이블과 같다는 원서 <What Color Is Your Parachute?>까지 빌렸다. 원서라 확실히 읽는 속도가 더디기는 하지만, 그래도 착실히 책을 따라 하며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등 탐색 중이다. 20대에 끝냈어야 했건만, 골치 아픈 일은 계속 미루다가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자아 찾기'를 하려니까 불안감 증폭+현타가 오기도 하지만 꿋꿋이 해보련다.
- 캘리그래피
시간적으로 아무런 제약이 없는, 자유만 있는 삶을 살고 있으니 스트레스가 없어야 하는데, 앞날에 대한 불안감으로(원래도 불안감이 높은 불안형 인간이라 사는 게 스트레스인 것 같기는 함) 인한 스트레스가 심한 요즘이다. 이를 완화해 보고자, 취미 삼아 좋아하는 일도 배워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글씨 쓰기를 배우기로.
서예보다는 조금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캘리그래피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니까 설렌다. 매주 '할 일', '가야 할 곳'이 생겼다는 것도 꽤 괜찮은 기분이다.
혼자 여행하고 돌아와서 이제는 다음 여행 계획도 없으니(돈도 떨어져 가고) 현실감이 확 몰려온다. 원래는 안식년을 계획하기는 했지만, 사실 재산도, 재능도 없이 30대 후반 싱글 여자가 1년을 쉬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점점 든다. 프리랜서, 다양한 직업의 이야기 등을 다룬 이런저런 책을 접하고 알바몬, 취업포탈 등을 들락날락거릴수록 원래 했던 직장생활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는 것 같다. 특별한 기술/재능이 있지도 않고, 사람을 좋아하는 외향형 인간도 아니고...
어느덧 퇴사 6개월 차. 건강도 어느 정도 회복한 것 같다. 오래 쉬기는 쉬었으니 이제 현실로 다시 돌아갈 길을 모색해 봐야겠다 생각이 드는 안식년 22주 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