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과정을 하다 보면, 뛰어난 논문을 내는 연구자들에게서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대체로 두 가지 유형 중 하나에 속한다. 하나는 압도적으로 많은 실험을 수행하여 그 안에서 새로운 현상을 발견해내는 연구자이고, 다른 하나는 이론적 기반과 실험적 직관을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해내는 연구자다.
이 두 유형 모두 훌륭한 연구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Nature, Science, Cell(NCS)과 같은 최상위 학술지에 게재되는 논문들을 살펴보면, 현재 존재하는 소자 성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거나, 정형화 되어있지 않은 새로운 현상을 보고하는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즉, 새로운 발견이 있어야만 소위 말하는 높은 수준의 연구가 가능한 것이다. (물론, NCS에 게재되어야만 좋은 연구라는 주장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짧은 연구 경험 속에서 내가 느낀 바는, 단순히 많은 실험을 통해 우연히 얻어낸 발견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이론적 배경 없이도 많은 양의 실험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눈에 띄는 데이터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지도교수나 선배의 도움을 받아 해석하고, 고쳐 쓰고, 방향을 다듬으면 훌륭한 논문이 될 수도 있다. 이 방식은 학위과정 동안에는 유효할 수 있다. 하지만 독립된 연구자로서 스스로 연구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시점이 오면, 자신의 연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런 질문이 뒤따를 수 있다. "결국 합리적인 아이디어 또한 수많은 실험적 경험에서 나오는 것 아니냐?" 이는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그러나 실험적 경험이 본인의 진정한 지식으로 쌓이기 위해서는, 그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이 필요하다. 그저 데이터를 많이 모은다고 해서 통찰이 생기지 않는다. 실험 결과를 연결하고 이해하려면, 기본적인 개념과 원리를 내면화한 상태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함께 연구하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학부 수준의 교과서 두 권 정도는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것을 조언한다. 예를 들어 재료공학 분야에서 반도체 소자를 연구한다면, 하나는 반도체 소자 물리, 다른 하나는 고체물리학 개론을 다루는 책이 될 것이다. 이 책들을 단순히 학부나 대학원 수업에서 한 번 접했다는 수준을 넘어서, 다회독을 통해 연구 여정의 ‘이해의 틀’로 자리 잡게 해야 한다. 이러한 ‘이해의 틀’ 위에 학위과정 중 읽게 되는 논문들, 학회나 세미나에서 접하게 되는 훌륭한 연구자의 발표들, 그리고 본인의 실험 결과를 하나씩 덧붙이며 지식의 구조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압도적인 실험의 양으로 연구를 해나가는 것은 공학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고, 더 나아가 한 분야를 이끄는 연구자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론을 바탕으로 실험을 설계하고, 그 결과를 정확히 해석하는 연구가 장기적으로는 더 깊이 있는 연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글에서 미처 다 전하지 못한 내가 생각하는 이론적 기반의 중요성과 그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