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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쳬쳬 Jul 18. 2023

서툰 식집사를 위로하는 허브 시리즈

적은 흙에도 자라주는 애플민트

4월 27일, 애플민트를 심었습니다. 청양고추 모종 2개와 상추 모종 2개를 구입하며 배송비 아끼려 묶음배송으로 주문한 로즈마리와 함께 심었습니다. 커다란 화분에 모두 담길 줄 알았습니다. 그건 제 착오였습니다.




2주가 지나니 화분에 활착을 마친 식물들이 서로 영역 싸움을 하며 성장이 더뎌졌습니다. 로즈마리만 이탈리아제 토분 하나에 분갈이를 해줄 수 있었습니다. 흙을 담을 적당한 화분을 구하는 대신 손에 잡힌 튼튼한 검정 택배 봉투에 흙을 절반쯤 채워 재배봉투를 만들어 고추나무와 상추를 옮겨 심었습니다. 재배 봉투가 쓰러지지 않게 물받이용 아이스박스를 아래에 받쳤습니다. 남은 흙을 박스 모서리에 모은 뒤에 재배봉투를 통과한 물이 흙을 통과해서 박스를 빠져나가게 배수 구멍을 냈습니다. 애플민트의 자리는 가장 볼품없고 겨우 뿌리 덮을 흙뿐인 아이스박스의 모퉁이 었습니다.



6월 17일, 뿌리내릴 흙도 충분하지 않던 아이스 박스에서 애플민트가 번져 올라왔습니다. 친구들과 파김치 클래스를 하고, 애프터 파티로 바베큐를 했습니다. 테이블에 애플민트를 뚝뚝 꺾어 장식을 했습니다. 여린 잎은 물통에 띄워 냉침해 애플민트워터를 만들어 마셨습니다.



애플민트는 아무렇지 않게 자라줬습니다. 물도 한 번 제대로 부어주지 않았는데, 재배봉투를 통과한 물로도 자라줬습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건 약간의 수분과 풍부한 햇빛 그리고 바람뿐이라며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7월 중순 애플민트

7월 16일, 애플민트가 활짝 번져 있었습니다. 쏟아진 비에 다른 식물들이 과습피해를 입는 동안, 돌보는 손길 없이도 들불처럼 번져 피어난 애플민트가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이스 박스 안 두 줌 흙에도 빈자리가 있었는지 어디선가 날아든 쇠비름에게도 뿌리내릴 자리를 나눠줬습니다. 들풀 가운데 깃든 사랑을 바라봅니다. 필요한 건 약간의 수분과 풍부한 햇빛 그리고 잎새를 닦는 바람뿐. 그리고 언제든 잎새를 내어주고 모히또 베이스가 되어줄 애플민트가 위로가 되는 한 여름밤의 어느 옥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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