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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된고양이레오 Aug 02. 2023

E16. 아, 집에 가고 싶다

D.P 시즌 2 (2023) - Netflix


사진만 봐도 복잡한 감정이 드는

아마 군대 다녀오신 모든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전화 한 통을 위해 몸을 던져 굴러야 했던 수많은 훈련들과

눈물 콧물 쏟으며 견뎌내야 했던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를,

초콜릿 과자와 콜라 한 캔에 자유를 팔아야 했던 주말을,

급식으로 나온 요구르트 한 개 더 받았다고 누구보다 크게 기뻐하던 그 옹졸한 순간을,

고작 한 주 일찍 징집되었다고 옆 연대 빡빡이를 전역이 멀었다고 놀리던 시간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행동만을 해야 했고

쉬는 날에는 일광건조와 전투체육을 하며 휴식해야 했던 그 시간들을요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라는 거창한 포장지로 쌓아두었지만

실상은 2년여의 청춘을, 자유를, 기회를 내다 버려야 했던 감옥과 다를 바 없던 시간들을요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처음 보는 수많은 얼굴들이었을 것입니다


언제 봤다고 반말 찍찍 던져대며 인신공격 하는 선임들과

입영 순서로 결정되는 권력의 위계질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방관하는 모두들을 보는 것이야말로 군생활이 힘든 이유였음을 모두가 기억하실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DP를 보고

"저, 저 탈영병 놈들 봐라... 하여간 요즘 것들은 정신 건강이 약해빠져 가지고..." 같은 꼰대 중대장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기시감을 느끼고 공감하게 되는 것이겠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살짝 불편해집니다

근데 왜 보고만 있었어요? 그렇게 착하고 성실한 애가 괴롭힘 당할 때 왜 보고만 있었냐고요....


왜 보고만 있었는지 몰라서 묻는 것이겠지만,

그렇기에 더 먹먹해집니다


누군가는 군생활을 자랑처럼 말하고

대한민국의 국방 시스템을 추앙하기도 합니다


예비군 훈련을 가보면 아직도 몸이 기억하며 훈련을 척척 해내는 분들도 계시고,

우스갯소리처럼 홍대 앞에 전차를 가져다 두어도 10분 내로 운용 가능할 것이란 말을 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글도 있죠

청춘의 소중한 시간을 바쳐 나라를 지키는 데에 힘썼기에 이와 같은 말들도 가능한 것일 겁니다


다만 나라를 위한 이들의 봉사에 대해 국가는 충분히 보답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선뜻 긍정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오히려 홀대하고 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죠


"징집할 때는 우리 아들, 다치면 느그 아들"이라던가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병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요


DP는 이러한 '군대 냄새'를 잘 재현해 냈었습니다

시즌 1의 DP는 약간의 과장은 보탰을지라도 분명 군생활 당시의 탁한 공기를 떠올리게 했거든요

그러면서도 아예 말도 안 된다거나, 허황된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다 주변에서 듣거나, 보거나, 있을법한 이야기들이었죠


시즌 2의 DP는 그렇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보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위해 과장이 보태졌고

안호준과 한호열의 버디 무비로써의 요소가 더 강조되었습니다

사회 정의에 대한 이야기가 늘었고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인물들이 등장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관객들에게 보여주려 했고

모두가 좋아할 만한 결론을 지어주었죠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D.P가 재밌었던 이유는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내 옆에 앉은 누군가의, 내 친구의, 내 가족의,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D.P를 보면서 안준호의 갈등에 동참하고,

한호열의 넉살에 즐거워하고,

박범구와 임지섭의 대립을 흥미로워 할 수 있었고,

각각의 탈영병들의 사연에 집중할 수 있었죠


시즌2의 5화에 이르러

안준호가 세상과 맞서 싸우는 슈퍼히어로가 되어버리자

이 이야기는 더 이상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DP는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다루는,

그저 그런 평범한 드라마가 되어버렸습니다



전역을 앞둔 저는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아, 집에 가고 싶다"


하도 미친놈처럼 매일, 매 순간 말하고 있다 보니

전역하고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웠는데도 이 말을 하고 있더군요

"아, 집에 가고 싶다... 아, 집이었지?"


지금은 미천한 사노비가 되어 또다시 귀가 욕구를 외치는 신세가 되었지만

이 에피소드는 제게 있어서 군대가 어떤 곳이었는가를 반추하게 하는 기억 중 하나입니다



DP 시즌 2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한호열의 "전역하고 뭐 하지"하는 고민이나,

김루리의 연기, 니나의 뮤지컬 등 좋은 장면들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쇼는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더 이상 그것은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으니까요


이제 DP는 남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치 전역 후 자대를 보는 것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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