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길 남쪽 입구에 들어섰다. 난젠지에서 철학의 길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소로길과 주택가 골목이기도 해서, 산책을 굳이 철학의 길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난젠지에서 여기까지 걸어서 오는 길도 산책의 기분을 즐기기엔 부족하지 않다. 단지, ‘철학의 길’이라는 안내판이 있기에 어떤 장소에 왔다는 조금 달라지는 기분, 그 정도의 변화가 있을 뿐이었다.
수로각 위를 흐르는 비와호의 물이 철학의 길 옆 개천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정확하지는 않다. 일본의 산세는 조금 가파르다. 가파른 능선으로 물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게 흘러내려, 작은 개천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옆의 작은 둑길이 산책로가 되었고, 근대 일본 철학자 니시다 키타로는 아마 우연히 이 둑길을 걸었을 것이다. 걷다보니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개천 맞은편 산에서는 쾌적한 산공기가 내려오고, 줄지어 선 벚나무는 봄이면 화려한 꽃을 피어 날리니, 산책하기엔 정말 좋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만 이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길을 걸은 당대 수많은 사람들 중에 유명한 철학자 한 사람이 끼어 있었다고, ‘철학자의 길’이 되었다는 사실.. 자잘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결론이다.
니시다 키타로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잠시 찾아본 자료들에 의하면 그는 교토학파의 한 사람으로, 선불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서양철학을 받아들여 독특한 근원적 논리를 구축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개천을 낀 이 작은 길을 어떤 마음으로 걸었을까? 사상의 기저에 선불교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려고 이 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철학적 고민에서 벗어나 잠시 다른 생각들을 하기 위해 산책을 즐겼을 것이다. 철마다의 변화와 무질서의 조화가 만든 자연 그 자체의 풍경 속에서, 료안지의 깔끔하게 정리된 정원같은 철학을 상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마치, 내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듯 말이다.
그래서, 그 기분을 만끽하려고, 철학자가 걸었던 둑방길을 걸었다. 4년전, 이 자리에서 사람들을 맞이해주던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2월의 겨울이라 벚나무 가지는 앙상했고, 사람도 많지 않았다. 영어를 쓰는 몇몇의 백인들과, 중국어 한국어가 교차로 들려오는 동양인들 다수가 내 주변을 오가고 있었고, 동네 사람들은 옆의 주택가로 다니거나 문을 연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천천히 걸었다. 반나절의 시간을 생각하고 온 이 길을 온전히 즐기려 했다. 일부러 천천히 걷느라, 뒤에서 오는 사람들의 길을 비켜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즐기기엔 날도 조금 쌀쌀했을 뿐 아니라, 천천히 즐길만한 것들도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있었던 4년의 시간차는 풍경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요지야 카페를 비롯해서, 잠시 들어갈 만한 카페들이 많이 사라졌다. 기억에 있던 옷가게나 소품가게들도 많이 사라졌다. 관광지처럼 번잡하지는 않았지만 보고 먹고 즐길거리가 적당했던 이 동네가, 이제는 거의 주택가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풍경은 그대로였다. 이끼낀 낡은 시멘트 다리, 봄이면 참 아름다울 벚나무들과, 정적인 모습의 주택들, 이파리로 배를 만들어 다리아래 개천에 띄우는 어느 노인, 물 속의 잉어들과 물가에서 고개를 묻고 쉬는 오리들.. 걷는 자체로도 참 좋았는데, 잠시 들어갈 곳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쉬웠다. 우리는 잠시 작은 그릇가게를 들러 구경하다가, 사간(Sagan)이라는 50년 넘게 자리하고 있다는 커피집에 들러 다리를 쉬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앤틱한 분위기의 카페였다. 커피는 프림과 설탕을 넣어 마시는 옛 방식이었고, 계란 샌드위치에는 시소가 들어가 독특한 맛이었다. 가만히 앉아 창 밖의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지팡이를 짚고 오는 동네 노인들이었다. 우리가 테이블에 앉을 때, 노인들은 한 명씩 들어와 바에 앉아 서로 친근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겨웠다. 그들이 나누는 일본어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니, 그 모습 자체로 그렇게 느낀 것일까? 말 속에 있을 수 있는 가벼움, 부박함 그런 것들을 알 수 없다는 점은, 말을 알아듣지 못해 답답하다는 단점의 반대편에 있는 장점 중 하나이다.
그러나, 글을 읽고 말을 듣지 못한다는 점은, 내 개인에 있어서는 여행의 가장 큰 단점으로 다가온다. 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여행지에서의 책방은 되도록 들르는 편이라 더욱 그러하다. 철학자의 길에서의 여정이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되어, 우리는 바로 구글검색을 통해 버스를 타고 케이분샤 이치조지점으로 향했다. 가보고 싶은 서점이었다. 고급 문구류도 찾아보겠다는 여행의 목적에도 부합했다. 버스가 다니는 길가에서 내려, 작은 길로 몇 블록을 따라 길게 걸었다. 라멘집, 뜨개용 실을 파는 집, 슈퍼 그리고 주택들을 지나 걷다보니 있는듯 없는듯, 하지만 간판이 세 개나 옆으로 길게 걸려있어 널직한 공간의 케이분샤를 볼 수 있었다. 어떤 책들, 어떤 소품들, 그리고 어떤 분위기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들어갔다. 넓은 공간 안에 서가마다 꽂힌 책, 그리고 책의 향기, 소소한 소품들.. 책들이 많으니 어지간한 말소리는 적당히 묻혔고, 알아서들 목소리를 낮추는 그런 분위기였다. 서점의 독특한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나는 그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난민이 되어 버렸다. 히라가나 가타카나 겨우 읽는 수준으로 책 하나 펼쳐들고 살필 능력도 없었다. 뭐라도 보일까 해서 찬찬히 책들을 살폈지만, 일본의 책들은 작기도 하고 표지디자인도 우리와는 조금 다른 면모도 있어 까막눈에 생소함까지 더했다. 그게 꼭 여기서만은 아니었다. 미국의 반스앤 노블에서도, 대만의 타이베이와 가오슝의 서점에서도, 번역된 한국책 코너 앞에서의 반가움을 제외한다면, 나는 언어난민 신세였다. 그래서, 나는 자주 후회하곤 한다. 어릴때 언어를 좀 더 다양하게 공부해둘 걸.. 지금은, 일과 다른 관심사를 핑계로 시작하지도 않고 있다.
결국 서점의 분위기만 둘러보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기대했던 문구류 역시 생각과는 많이 다른 종류와 수준이라 둘러만 보고 나왔다. 그래도, 다녀갔다는 흔적은 남겨야지.. 케이분샤 글자가 새겨진 금속 책갈피와 필기구를 구입했다. 이치조지의 동네 분위기는 꽤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이 동네를 산책하듯 걸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목적한 여행이 있었다. 내일의 여행 주제인 치텐조를 위해서는 동선상 오늘 쇼덴지를 들러야 했다. 이치조지에서 쇼덴지까지는 거리가 있어 대중교통을 활용하기 어려웠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그 비싼 일본택시를 이용했다. 친절하고 동선을 일부러 꼬아 다니지도 않았지만, 이 좁은 동네에서의 운전은 사람의 신경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 했다. 운전이 살짝 거친 느낌이었다. 나도 운전환경이 점점 안좋아지는 제주에서 운전을 거칠게 하는 편이니,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쇼덴지를 나와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며 30분 남짓 달린 버스는 사람과 차들로 북적이는 산조거리에 들어섰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아케이드 거리에 들어가 큐쿄도라는 아주 오래된 문구점에 들렀다. 로프트, 토비치, 핸즈, 트레블러스 팩토리 등등도 다녔다. 결론은 내가 찾는 종류와 수준의 문구류는 볼 수 없었다. 전통 문구류를 다루는 큐쿄도나 다음날 들른 벤리도 같은 곳은 종이류와 향기 소품에 진심이었고, 다른 곳들은 우리나라에서 들를 수 있는 문구점과 거의 같아서 감흥이 일지 않았다. 문구의 직접생산지이니 우리나라보다 저렴하다는 점 정도가 다를 뿐이었다.
해가 진 저녁, 숙소에 잠시 들렀다 나와 저녁과 술을 같이 할 수 있는 부근 식당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은 ‘시즈쿠’라는 이름의 사케 전문 식당이었다. 사케를 세트메뉴로 내고, 2시간 정도에 얼마를 내면 무한정 사케를 마시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양이 적다는 특성을 제외한다면 음식도 꽤 맛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직접 찾아다니며 들르는 식당의 특징은 일본어를 못하는 외국 여행자들이 들어서면 주인들의 표정에 살짝 긴장이 생기고, 영어 메뉴판이 있긴 하지만 그다지 세세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이게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지 않은가. 어제는 교토 맥주를 마셨으니 오늘은 교토 사케를 마셔야지 하고 3종 세트를 주문해 마시고 있는데, 옆으로 백인 커플이 들어와 앉았다. 어쩌다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덴마크에서 여행왔다고 했다. 안되는 영어로 이야기를 하다보니 여자는 정신과를 전공하는 중인 의사라고.. 반가운 마음에 안되는 영어로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이야기는 그들이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서 마무리되었다. 유럽을 가 본적도 없지만, 여행지에서 덴마크인을 만나는 일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가 어떤지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었던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