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 후시미성 전투가 벌어진다. 1598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임진왜란이 종결된다. 이후 토요토미 가문을 따르는 세력간의 갈등과정에서 후시미성 전투가 발생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배신당한 이시다 미쯔나리는 4만의 대군을 이끌고, 후시미성을 지키고 있던 도쿠가와의 가신인 토리이 모토타다의 2천 병력을 공격한다. 전세는 숫자가 말해주듯 일방적이었으나, 후시미성은 12일간을 버텨냈다. 결국 8월 1일 토리이 모토타다 이하 남은 380명의 병력은 성 내 복도에서 집단으로 할복자살하며 전투는 종결된다. 이때 흘린 피가 복도의 나무들을 붉게 물들인다.
후시미성 전투는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초전으로, 결국 동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력이 서군인 이시다 미쯔나리 세력을 제압하면서 이에야스의 시대가 시작된다. 이후 도쿠가와 가문의 부인들이 후시미성에서 할복한 이들을 기리며 공양하고 싶다는 의미로, 그들의 피가 물든 복도의 나무들을 교토의 몇몇 사찰을 건립하는데 사용한다. 몇몇 사찰의 천정이 이 피로 물든 나무들로 만들어진다. 그 사찰들 중 내가 가 본 곳은 료안지에서 좀 더 북쪽에 위치한 쇼덴지와, 삼십삼간당 바로 옆의 요겐인이다. 피의 천정이라는 의미로 ‘치텐조’라고 불린다.
쇼덴지는 하얀 모래밭에 철쭉과 동백을 전정하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3-5-7 숫자로 심은 정원이 인상적이다. 료안지의 유명한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데, 나무를 심은 이유는 순전히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여튼, 나는 쇼덴지의 정원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치텐조를 보러 왔으니 정원을 내려다 볼 것이 아니라 고개를 들어 천정을 봐야 했다. 유홍준의 책 교토편에도 나왔던 사진 그대로의 천정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400년 전의 사람들의 피로 물든 나무라니.. 나무들은 세월에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상해가고 있었고, 붉은 핏빛은 빛바랜 주황색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유홍준은 후시미이나리 신사의 도리이색인 금적색을 일본인들의 사상을 구성하는 피의 정서, 피의 색이라고 말한다. 천정의 나무에 찍힌 400년 전 죽어가던 사람의 피묻은 손가락 자국들이 곳곳에 선명했다. 그 나무들을 태우거나 버리지 않고 공양이라는 명목으로 절을 짓는데 사용하는 일본의 정서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치텐조의 색, 금적색은 일본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다. 그것이 이들의 피의 정서라고 생각하니, 일본은 생각보다 멀리 있는 나라로 느껴졌다. 같이 사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도 힘든데, 바다로 나뉘어져 있는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다지도 힘든 일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 교류를 해 왔다 하더라도 말이다.
요겐인은 실내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삼나무 널문에 그린 사자, 흰코끼리, 기린 등의 그림은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었고, 다른 주요 문화재들이 많은 절이라 그런듯 했다. 일본인들은 국가 문화재인 그림들을 보러 왔고, 나는 실내 천정을 가득하게 메운 치텐조를 감상했다. 실내에 있어 그런지 쇼덴지의 그것보다 보존이 훨씬 잘 되어 있었고, 색도 바래지 않았다. 피의 기운이 내리는 듯한 어두운 공간 아래서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널문의 그림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는 풍경, 관심의 영역이 다르고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여행자의 시선은 무언가 진지하게 그로테스크하다고 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과 달리 천정을 향해 고개를 열심히 들고 다녔더니 뒷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호텔의 아침 조식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종류가 많지 않으면서도 하나하나가 맛있었는데, 오차즈케와 우메보시, 구운 고등어가 특히 내 입맛을 끌었다. 이제는 속이 좋지 않아 무언가를 마음껏 먹는 일이 주저스러운데, 호텔의 이 메뉴는 두세번을 먹어도 속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을 너무 많이 먹으면 여행에 부담이 될 수도 있으니 뭐든 적당히 하는 것이 좋다.
아침 일찍 숙소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동네에는 차로 유명한 잇포도차호와 와사비콩 등의 일본과자로 유명한 마메마사 본점이 있었다. 잇포도차호는 아내가 이전 여행에 들렀다고 해서 건너뛰었고, 마메마사 본점은 선물을 사기 위해 들렀다. 선물을 고르고 가게 안을 둘러보는데, 오랜 시간 그 자체가 배어있는 모습이 정겨웠다. 우리는 어째서 이런 오랜 시간을 잘 간직하지 못할까.. 대를 이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아이패드로 결제를 하는 방법을 몰라 연신 미안한 표정의 미소를 지으며 매뉴얼을 찾아보는 모습에서, 이 사람들의 아날로그적 감성은 정서의 어떤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와 비교하면 간직된 오랜 시간과 아날로그의 감성은 삶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고 구성할까 싶은 것이다.
과자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KURASU라는 카페에 들렀다. 이제 막 문을 연 참이었다. 깔끔하고 모던한 스타일의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누자베스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기분! 마치 우연하게 보고싶었던 사람을 만나는 것 같은 행복이 마음을 채웠다. 그래서 안되는 영어로 ‘나 누자베스 너무 좋아한다. 누자베스와 여기 카페 분위기 너무 잘 어울리고 마음에 든다.’라며 주인장에게 떠들었다. 그랬더니 주인인 젊은 여자는 서툰 한국말로 ‘감사하다’고 말한다. 한국을 좋아한다며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카페의 분점을 서울에서 내고 싶다고도 말했다. 반가운 마음.. 이번 여행에서 느낀 점 하나는 한국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식당이 많은 기야초 거리에는 간판과 입구를 아예 한국어로 적어두고 마약갈비라는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도 볼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맛집 찾는데 아마 세계 일등일 한국사람들이 찾아가는 식당의 종업원들은 알아서 한국어를 구사하거나 배워서 말하기도 했다. 하기사, 맛집이라고 찾아가면 80퍼센트는 한국사람들이 차지하고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국어를 안 쓸 수도 없을 것이다. 여튼, KURASU의 핸드드립은 내 스타일과는 조금 맞지 않았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편하게 앉아 아침 커피를 마실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숙소에 선물꾸러미를 놓고 나와 부근의 문구점인 벤리도를 찾았다. 역시 마음에 드는 문구는 없었지만, 종이에 진심인 이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해서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공책 한 권을 구입했다. 그리고, 후시미 모모야마성으로 향했다. 후시미성은 1620년 경에 폐성되었다가 1960년대에 재건한 성인데, 토요토미 시대의 건축양식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복원의 의미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내진강도를 충족하지 못하는 건축물이어서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사실, 이 지역은 놀이공원으로 개발되었다가 2003년 폐장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저 동네사람들이 반려견을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공원 정도가 되어 있었고, 야구장 등의 스포츠시설이 옆에 조성되어서 운동하러 오는 팀들이 오가는 그런 곳이 되어 있었다.
토요토미 시대의 건축양식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인 도요쿠니 신사에 잘 구현되어 있고, 후시미성 함락당시 성의 당문을 가져다 신사 안쪽의 문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는 도요쿠니 신사에 들르기로 했다. 그 전에 요겐인에 들러 치텐조를 먼저 감상했고 말이다. 도요쿠니 신사는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고 신사의 지붕모습을 보고 당시의 건축양식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삼십삼간당의 널찍한 담을 따라 걷고 요겐인에서 교토박물관의 담장을 따라 걸어 도요쿠니 신사를 보고 나니, 바로 앞의 이총에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의 역사이니 말이다. 이총 앞 계단에 누군가가 놓고 간 참이슬 소주를 한 병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최근 나의 일본여행의 중심에 있었다. 지난 여름,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 1597년 1월 히데요시의 명에 의해 교토에서 출발한 천주교인들은 한 달 간 800킬로의 길을 걸은 뒤, 그 언덕의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 치텐조, 후시미성, 이총, 그리고 일본 천주교 박해역사.. 의도하지 않은 우연에 기분이 조금 묘했다.
계획했던 여행의 목적들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이틀을 꼬박 채울 줄 알았는데 반나절 조금 안되는 시간이 남았다. 교토역 동양정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문구점에서 비싼 만년필들을 구경하다가 다시 시조거리로 나와 걷다가 니시키 시장을 구경했다. 시장에서 숙소까지 천천히 걸으며 해가 진 어두운 골목 풍경을 구경했고,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조금 비싼 요리를 먹고 나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갓포요리집이었다. 덜 채워진 배를 마저 채우기 위해 닭꼬치집인 야키토리집을 찾아들어가 역시 안되는 영어로 물어보니, ‘인당 꼬치 몇 개 이상을 주문해야 하고, 맥주를 같이 마시면 좋다’는 단 한 문장의 영어안내를 볼 수 있었다. 젊은 직원이 열심히 검색하며 알려준 야키토리 몇 개를 맥주와 함께 먹고나니 밤은 더욱 깊어 있었다.
아침일찍 우리는 왔던 순서의 반대로 간사이 공항으로 향했다. 여행 중 가장 맛있었던 음식인 오차즈케와 고등어구이 조식을 넉넉히 먹었고, 공항 편의점에서 구입한 오니기리로 여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