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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Apr 21. 2024

봄날의 일상 20240421

  포털 사이트의 뉴스를 보지 않은 지 두 어 달이 지난다.  의사들을 악마화하는 정부와 언론의 모습에 화가 많이 난 까닭이다.  세상 분위기는 SNS로 간략히 파악하며 지내고 있다.  생각보다 순기능이 많았다.  일단은 내가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까막눈이 되지 않았다.  일상은 아무렇지 않게 유지되었다.  오히려 공부를 할 시간이 늘었다.  포털 사이트의 기사를 클릭할 시간에, 나는 강유원 선생님의 철학책을 펴들거나 철학잡지 뉴필로소퍼를 펼쳤다.  적극적으로 또는 면밀하게 세상이나 현상을 논평할 능력도 없지만, 그렇게 감정과 시간을 소비할 시간에 편안한 마음으로 좀 더 세상과 현상의 근본에 가까운 글들을 접할 수 있어 좋은 시간들이다.  내친 김에 때마침 개설된 철학강의를 하나 신청해서 매주 한 번씩 참가해 듣고 있다.  파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는데, 내겐 딱 좋은 강의라 더욱 마음에 들고 있다.  세상의 변화에 대해 직접적이고 가깝게 다가서 있는 모임이나 대화는 앞으로 꽤 오랜 기간동안 피할 생각이다.  세상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흐르고,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나보다 더 명민하고 언변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대신 해주고 있으니, 나는 필요하면 나중에 그런 말과 글들을 모아 살피면 될 일이다. 


  의사를 악마화하는 세상에 화가 나 있지만, 동시에 선배의사들에게도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이들이 의대 증원이 필요없다고 이야기하는 논리에는 그럭저럭 동의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까지 의사의 역할을 통해 간접적인 권력과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다.  동시에, 그런 매너리즘 때문인지, 세상이 그리고 의료환경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단지, SNS를 통해 정부와 세상의 이야기에 한가한 논평이나 실으면서 ‘거 봐, 내 말이 맞지.’ 하는 정도의 자기만족이나 즐기고 있다.  후배 전공의들의 상실감을 이해한다면, 기저귀나 분유만 챙겨줄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모색을 같이 고민하고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과거 의사집단의 수장을 맡았던 사람이라면, 그래서 지금의 정부가 예의주시하며 바라보는 인물들이라면, 그들은 집단 내부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질 변화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을 이어야 한다.  분유값 기저귀값이야 그들에게는 몇 푼 되지 않는 비용일테니 기본값으로 가져갈 일이지,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니다.  


  총선의 결과 이후로 정부는 꼬리를 내린 모습이다.  의대 2000명 증원계획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당연한 결과다.  한 국가의 정부라는 집단이,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계산해서 내세운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리 없다.  여전히 남은 고집을 부리고는 있지만, 무리해서 추진한다 하더라도 제대로 될 가망도 없다.  다만, 의료환경의 변화는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되었다.  고령화 사회가 되고, 점점 자본이 잠식할 의료에서 각 직능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질 지는 동네병원 원장 입장에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의료 전반을 거머쥔 정부의 의료 정책이라는 것이 있고, 지역사회에서 의료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입장에서는, 의사의 증원은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  의사는 진료실에서만 있을 것이 아니라, 골목 구석과 산골 깊이 찾아들어갈 필요성을 깨닫고 있다.  행정 전반과, 사회복지와 연계된 정부의 의료서비스에 의사의 역할도 좀 더 필요함을 깨닫는다.  수가가 낮으면 수가를 높이고, 행정과 정책에 필요한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행정 안에서도 활동할 의사들 역시 좀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의사의 수익이 합당한 이유로 줄어든다면 그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  진료실에 앉아 하루하루의 머릿수를 채우는 형식의 현재의 진료형태는, 의료서비스가 좀 더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의 차원에서, 그리고 건강보험과 사보험의 재정관리 차원에서,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사기업이 스스로 손익을 계산해서 운영하는 실비보험 사업을, 어째서 정부가 걱정해주고 의사들이 주적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과도한 실비보험 청구라면 사기업의 손익논리에 따라 알아서 손을 보고 통제하면 될 일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돌아보았을 때, 의사나 정부나 얻은 교훈은 현재의 상태로 보아서는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10%도 안되는 공공의료가 팬데믹을 막겠다고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도, 팬데믹의 사회적 위기가 얼마나 방대했는지도 경험을 했으면서도, 공공의료의 확충에 대해서는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  의료는 국민관리 차원에서 국가의 의무로 인식된 지 오래다.  그래서, 뭔가 부당하고 불합리한데도 의료가 건강보험에 묶여있다는 사실 자체를 사회직능 모두가 당연히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국가가 스스로 운영하는 공공의료의 영역이 있어야 하고, 팬데믹을 겪었다면 앞으로 종종 마주할 사태를 대비해 어느 정도 규모의 공공의료 영역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의료농단사태에 이런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고, 인의협이나 우석균 선생님 정도의 그룹에서 겨우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공공의료의 확충은 의사인력의 확충을 필요로 할 수 있다.  의사 증원은 여러모로 필요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마음에 깊이 들어오는 음악을 만날 수 없는 날들이 오래 지속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듣지는 않아도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그룹의 CD를 주기적으로 오프매장에 방문해서 사들고 오던 일도 지금은 뜸해졌다.  출근길에는 강유원 선생님의 서평과 강의를 앱으로 듣지만, 종종 운전을 오래 해야 하거나 음악이 듣고 싶을 때엔 음악앱을 연다.  그렇게 들은 음악들이 지근엔 에픽하이나 HONNE, Nujabes, Mondo Grosso 정도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캐나다 그룹인 Men I Trust 는 최근 내 마음을 두드린 음악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스페셜 게스트로 나온 코드 쿤스트가 그들의 음악인 sugar를 들려주었는데, 운전하면서도 이 음악 너무 괜찮다는 생각에 검색해서 음악 전반을 들어보았다.  역시 너무 마음에 들었다.  전체적으로 기름기를 뺀 글램록 같은 느낌도 있고, 농밀하면서도 깔끔함을 잃지 않은 보컬의 목소리와 깊고 임팩트있는 베이스 선율이 인상적이다.  Nujabes 이후로 애정하는 아티스트가 더 생겨서 귀가 만족스러운 날들이다.  집에서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다.  전혀 문외한이라 일단 라흐마니노프만을 집중적으로 듣고 있는데, 익숙한 선율이 몇 군데에서 들리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 익숙치 않다.  


  병원 대기실에 변화를 주고 있다.  대기실 텔레비전 소리를 아예 죽이고, 패드 하나를 구입해서 대기실 라운지 음악을 틀어두고 있다.  화면도 병원 홍보 동영상을 제작해 틀어두고 있다.  아직은 너무 짧고 구체적이지 않아 테스트 정도로 생각 중이지만, 대기실 환자들이나 직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좋은 편이다.  대기실의 동네책방 구독 프로그램은 매달 진행 중이고, 조만간 전시된 작품들도 교체할 예정이다.  


  검도는 꾸준히 수련 중이다.  4단이 된 이후로 자세나 움직임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느낀다.  실전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미진한 실력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려해야 할 검도자세의 변화와 움직임의 방식을 생각하면 올바른 방향성에 가깝게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최근 3개월 동안 체중을 5킬로 정도 감량했다.  오트밀은 위대하다.  오트밀에 아몬드 브리즈.. 감량할 결심의 고통과 동반되는 우울증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이다.  꾸준한 검도와 봄이 되며 시작한 라이딩, 그리고 텃밭일로 노동량이 많아진 부수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6개월 이상, 감량한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몸이 적응하고 요요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욕심은 아주 조금만 더 빼서 체중 앞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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