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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May 26. 2024

요즈음의 일상 : 20240526

  일주일에 하루 저녁, 철학 강의를 듣고 있다.  대단하거나 깊은 내용은 아니고 철학의 역사와 계보를 통해 큰 틀을 이해하는 수준이다.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는 강의다.  그간 파편적으로 다가와 이해가 되는듯 마는 듯 하던 지식의 조각들이 뼈대를 만나 자리를 찾아 붙는 느낌이다.  물론 뼈대를 알아간다고 해서 그간의 것들이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철학의 수많은 개념이나 이론들은 속담과도 같아서, 가져다 붙이기 마련이라는 느낌도 있다.  문제는 뼈대와 붙은 살을 가지고 논리를 구축해 나가는 능력인데, 나는 아직까지는 불가능한 수준이다.   

  공부 중인 철학은, 스스로 이해하려고 책을 펴든 서사의학이나 의료인문학과 이어진다.  의학의 인문학적 이해는 철학의 논리와 바탕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어렵지만 진료실에서 환자를 대하는 자세나 방식에 있어 어느 정도의 전환이 발생한다.  순전한 자영업자의 마인드로 살아야 하는 개원의의 입장에서는 이게 참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의사라는 정체성의 관점에서는 이제까지 우리가 실행해 온 의학의 이해나 진료방식을 반성하고 돌아본다는 점에서 매우 필요하다.  윤리와 인문학적 관점에서 이제껏 한국의 의사들이 양성되고 활동하는 모습은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의료윤리학자들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제기된 사안이다.  환자의 불만은 자본에 잠식된 의료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어떻게 마주하고 대화해야 하는가, 인간에 대한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진료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매우 부족한 인식과 수련에서도 상당히 기인한다.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현재의 어처구니없는 의료농단 사태를 다루는 세상의 모습에 대한 분노와 허탈감 때문이다.  잠시 세상의 사태에 대한 시선을 거두고, 좀 더 근본에 가까운 지점을 짚어 공부하자는 이유였다.  그런데, 그렇게 눈을 돌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현상에 대한 어느정도의 이해가 발생한다.  인문적 소양이 부족한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한탄과 현재에 대한 절망 뿐이었다.  선배의사들이 내뱉는 이야기라곤, 앞으로 이러이러할 거라는 나름의 분석과, ‘거 봐, 내 말이 맞지!’ 하는 정도의 자기만족 뿐이다.  허탈에 휩싸여 하는 일이라고는 직격탄을 맞은 후배 전공의들의 생활비를 지원해주자는 정도의 임시방편 뿐이다.  스스로의 길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논리적 분석은 전무하다.  이런 모습은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성과 공감능력이 부족한 집단으로 보이게 하고, 현실적으로는 결국 ‘밥그릇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된 집단’으로만 낙인찍히는 결과를 만들어 버렸다.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알량한 권위에만 의존한 채 이제까지 살아 온 집단의 당연한 결과다.  그렇게 내몰린 집단이 언론이 물기 쉬운 대상이 되고, 자극적인 기사거리로 전락하기는 매우 쉽다.  정도를 넘어 무식이 넘치는 정부가 이제껏 버티며 의사들을 두들겨 팰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목요일 오후마다 왕진을 다니는데, 처음엔 잘 몰랐던 일들이 서서히 보람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속적인 관심은 환자의 삶을 온전하게 바꿔놓고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마당을 나와 걷고 있었고, 욕창이 심해 호전을 장담할 수 없던 환자의 상태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져 있었다.  모든 것은 간호사들과 보호자들의 지속적인 노력이지만, 이는 의사의 판단이 전제되어야 하는 일이다.  의료가 진료실에서만, 병원 안에서만 지속적이어야 할까?  병원 밖에서도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은 매우 필요하다.  의료의 영역은, 당연하지만, 경계가 없다.  하지만, 우리의 의료는 마치 경계가 있어서 그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 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왕진을 통해 느끼는 것이지만,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 방향성은 병원 밖에서 나아지고 있는 환자들의 모습을 통해 영감을 얻어야 한다. 


  반 년만에 북토크를 한 것 같다.  ‘바람냄새가 밴 사람들’은 애정이 많이 가는 나의 첫 책이지만, 몇 번의 북토크를 거친 후 ‘이 활동이 어떤 의미가 있나’ 하는 작은 회의가 생겼고, 다음 책 구상을 위한 고민으로, 첫 책에 대한 관심을 잠시 미뤄두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자신이 없었던 북토크였다.  하지만, 두 시간을 채워 말하는 나의 모습과, 나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기운이 다시 생겼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 그리고 해야 하는 말들이 아직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생기면 종종 북토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  8월에 한차례 예정되어 있으니, 생각에 힘을 조금 빼고 여유로이 준비를 해야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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