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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Jun 23. 2024

장마 : 20240623

  이른 오후에 집에 들어오자 마자,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고, 입고있던 긴 바지를 벗었다.  상의도 칼라가 있는 폴로티를 벗어버렸다.  하늘이 구멍난 것처럼 쏟아지는 비를 뚫고 갑자기 요청이 들어온 왕진을 다녀온 뒤였다.  신발 속 양말은 살짝 젖어 있었고, 바지와 티셔츠에도 눅눅하게 비가 배어 있었다.  양말도 마저 벗고 편안한 반바지와 라운드티를 입었다.  바깥은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는 가늘어졌지만 바람이 시작되었다.  맨발에 크록스를 신고, 한결 가벼워진 몸에 우산 하나 들고서 다시 집을 나섰다.  라이에겐 미안하지만 비를 맞으면서까지 산책을 가고 싶지 않았다.  얌전하게 산책을 하는 녀석도 아니어서 더욱 그러했다.  대신 어제 밤 늦게 이럴 일을 예상하고 미리 산책을 시켰다.  꼬리를 내리고 실망하는 녀석의 눈빛을 뒤로 하고, 나는 우산을 편 채 가볍게 집을 나섰다.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의사로서의 직업활동을 시작한 뒤로, 차림은 언제나 긴 바지에 구두나 운동화였다.  상의도 더운 날이면 가끔은 라운드티를 입었지만, 칼라가 있는 폴로티를 주로 입었다.  추운 날에는 상관없는 차림이지만, 더운 여름이면 긴 바지와 운동화가 부담스러운 날들이 많다.  더위를 잘 타는 몸이라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반바지에 편한 슬리퍼를 신고 진료실을 들어오거나, 비오는 날 그런 차림으로 편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각자의 직업적 옷차림이라는 것이 있고, 저마다 편하게 입고 다닐 수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의 내 눈에 들어오는 그 모습들은 어쩔 수 없는 부러움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병원에 오면 유니폼으로 갈아입는데, 출퇴근을 그렇게 편한 차림으로 다녀볼까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오랜 습관은 마음마저 틀에 고정시켜 버렸는지, 민망함부터 드는 생각에 선뜻 시도조차도 하지 못했다.  


  비바람에 손에 든 우산이 좀 거추장스럽긴 해도, 크록스에 반바지를 입고 비 오는 거리를 걷는 일은 무척 홀가분했다.  발과 다리가 빗물에 젖어도 상관없이 좋은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이 좋았지만, 가끔 이 편안함에 예전의 기억들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편안하게만 다닐 수 밖에 없었던 시절..  더위를 힘들어했지만, 차라리 더워서 마음은 조금 덜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좋은 옷이나 차림따위는 생각할 수 없이, 그저 싸고 편안한 옷들이라도 조금 넉넉했으면 했던 때였다.  생활비와 다음학기 전공서적을 구입할 책값을 벌기 위해 방학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그 해 여름에는 한 달 정도의 기간동안 예방의학교실에서 시행하는 치매조사 사업에 조사원으로 참여했었다.  수도권의 작은 도시에서 주소와 명단이 든 리스트를 들고 찾아다니며 간단한 치매검사 설문을 하는 작업이었다.  알바비도 쏠쏠하고 숙소와 식대까지 제공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도시 한복판을 돌아다니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당장의 옷과 빨래가 문제였다.  숙소에 들어가면 빨래를 하고 말려야만 다음날 다시 입고 나갈 수 있었다.  칙칙한 반팔 라운드티에 반바지를 입고 다녔기에 챙겨야 할 옷이 번거롭지는 않았지만, 옷이 좀 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에 옷을 살 비용부터 계산해야만 했다.  그런데, 옷값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계산은 커녕 옷은 살 수나 있을까 싶은 것이었다.  다음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내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조사를 하다가 시간을 내어 상가건물에 있는 대형마트 비슷한 곳으로 들어갔던 것 같다.  브랜드 간판 아래 정돈되어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들로는 쳐다볼 생각도 못했다.  매장 입구쪽, 널직한 매대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옷들을 열심히 뒤져가며 몸에 맞는 사이즈의 옷을 골랐다.  묵직하고 칙칙한 디자인의 옷들 속에서 마음에 드는 옷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았고, 있지도 않았다.  얼른 반팔 라운드티와 반바지 하나를 사들고 나와 계산을 하는데, 그래도 싸게 샀다는 마음에 안도감이 드는 것이었다.  


  정장셔츠와 면바지를 입어야 했던 실습과 인턴 시절 역시 그러했다.  목이 살짝 졸리는 셔츠를 어쩌지 못했고, 겨우 차림새를 맞추어 다니느라 힘들었다.  빡빡한 일정의 실습생 시절과 작정하고 탈출하지 않는 한 병원 밖을 나설 수 없었던 인턴시절에 옷이 어떻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생각의 사치이긴 했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옷을 잘 관리하는 일 마저 정신없는 일상의 중요한 요소였던 시절의 불편함은,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편하고 단촐한 차림에 잘 빠지지 않는 얼룩처럼 언제나 배어 있었다. 


  단정하면 오만이겠지만, 나는 고등학교 이후의 삶의 거의 대부분을 내 스스로 챙기며 여기까지 만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내가 의사라는 과정과 직업을 택한 일은 천운이었다.  경제적으로 지금의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직업이었다.  오십이 가까워진 지금의 나는 직업인으로서의 의사의 삶도 어느 정도 축적이 되었다.  어떻게 옷을 입어야 개성있고 세련되어 보일 것인가에 대한 감각은 젊은 시절 경제적 어려움에 밀려 형성될 새도 없었는지, 전혀 감도 없어 옷을 잘 입는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하지만, 더 이상 옷이 없어 고민하거나, 있는 옷을 어떻게 잘 관리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는다.  옷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 전반에 있어 삶의 기저를 위협당하는 수준의 고민을 하지 않는다.  재산을 모으거나 부풀리는 재주도, 모은 것도 없지만 말이다.  그러고보면 더운날이나 비오는 날에 긴바지에 양말신은 발을 감싼 신발을 신고 다녀야 한다는 불평은 염치없는 사치다.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오며 생긴 습관이나 감정의 국소적 역반응같은 것일 뿐이다.  반바지를 입고 출근할까 싶다가 이내 민망해지는, 오랜 습관이 굳어 발현하는 특정한 감정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직업적 착장이 분명 있을텐데, 쉬는 날이나 잠시의 시간 동안 편한 차림으로 내 앞에 나타났을 뿐인 사람들에 경계없는 부러움을 느끼는 내 자신을 단속해야 한다는 조용한 신호음을 느껴야 하는 일이다.  더운날 긴바지가 불편하다면 좀 더 통기성이 있는 얇은 바지를 입으면 될 일이다.  비오는 날 양말이 젖는 일이 싫다면, 방수가 되는 신발로 갈아 신으면 될 일이다.  


  우산을 쓰고 동네 바닷가 카페에 와서 내가 좋아하는 핸드드립 한 잔을 마셨다.  비가 와도 이 동네에는 유명한 카페가 둘이나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여러나라의 말들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 목요일의 루틴인 이자카야에 가서 해가 있을 때 사케를 한 잔 해야지..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그쳐 손도 차림도 한결 더 가벼워졌다.  제주는 시작된 장마로 비가 쏟아지다가도 오는듯 마는 듯 하다가 흐리기만 하기를 반복 중이다.  낮에도 해가 없다는 사실만 분명했다.  어제 마신 술로 늦잠을 자려 했는데, 새벽부터 호우주의보에 조심하라는 안전문자가 나를 깨웠다.  침대에서 빈둥대다가 몸을 겨우 일으켜서는 지금 이 일기를 쓴다.  비가 많이 올 것처럼 이야기하던 문자와는 달리, 적당히 내리던 비는 이제 그쳐 흐리기만 하다.  하루 종일 흐릴 예정이라고 한다.  일요일 아침, 종종의 루틴인 글쓰기를 마치고 나는 며칠 전의 차림처럼 아주 홀가분하게 입고 바닷가 부근의 카페로 드라이브를 갈까 생각하고 있다.  그럴 수 있는 주말의 여유를 항상 감사하게, 그리고 충분히 즐겨야 한다.  옷차림에 배인 그 지워지지 않는 얼룩은 운명처럼, 또는 반드시 챙겨야 하는 핸드폰처럼 잘 지닌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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