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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Feb 26. 2024

다소 실망스러웠던 책

밀렌드 M. 레레, 『독점의 기술』

일단 리서치를 그다지 많이 한 것 같지가 않다. 저자는 전략이나 경쟁 우위보다 독점만이 살길이고, 독점을 해야만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독점에 성공하거나 실패한 기업의 사례도 중구난방으로 각각 짤막하게 언급하고 지나가며, 그냥 자기 주변의 사례를 일화식으로 갖다 쓴 경우도 많다. 심지어 앞부분에 써먹은 사례를 뒤에서도 계속해서 사용한다.



무엇보다 핵심 주장부터 영 이상하다. 저자는 자꾸만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를 공격하면서, 수익을 내려면 경쟁 우위가 아니라 독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업들이 경쟁 우위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바로 독점을 위해서, 독점에 가까운 시장 장악력을 갖기 위해서다. 저자는 목표와 수단을 헷갈린 거다. 본인도 글을 쓰다가 이 점을 깨달았는지(?!) 이렇게 적는다. "여기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이 있다. 즉, 옛날 방식의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 다시 말해 독특한 제품, 브랜드 파워, 거대한 기회, 저비용 등은 단지 유용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목표는 독점이다" 그렇다. 그런데 그러면 지속 가능한 우위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여기서 이미 저자의 주장은 스스로 무너진다.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 없이도 독점을 할 수 있었다는 설명은 더욱 황당하다. 저자는 예를 들어 스타벅스가 경쟁 우위 없이 독점을 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가 "좋은 맛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커피"를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좋은 맛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커피"가 바로 경쟁 우위 아닌가? 저자는 스타벅스에 규모의 이점도, 독특한 제품 라인도, 경험곡선의 이점도, 브랜드 파워도, 비용 우위도 없었다고 하는데, "좋은 맛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커피"가 전혀 없는 시장에서 "좋은 맛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커피"가 독특한 제품이 아니면 대체 뭐가 독특한 제품인지 모르겠다.


뒤에 저자는 여러 종류의 독점에 대해 설명하는데, 여기서도 맹점이 드러난다. 자산 독점 중에 브랜드 독점이 있는데, 이는 "한 기업이 강력한 파워를 지닌 브랜드 이미지를 개발해서, 그 브랜드 마크만 빼면 경쟁자들이 파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물건을 팔 때조차 큰 가격 프리미엄(독점지대)을 붙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바로 저자가 책 전반에서 주구장창 비판하고 있는 브랜드 파워,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 아닌가? 책의 다른 부분에서는 "브랜드 파워라는 마법의 영약으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일념하에 아직도 광고, 마케팅 홍보, 스폰서, 특별 이벤트 등에 수십억 달러를 쓰는 기업"을 비판하면서, 또 다른 부분에서는 그가 그렇게 칭송하는 독점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거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모두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독점'은 좀 더 정확하게는 '충성고객'을 확보하고 확실한 시장 타겟팅을 정하라는 얘기인데, 이렇게 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기 어렵다. 경영진들이 "독점의 원천", 다시 말해 자신들의 경쟁 우위가 어디에서 오는지 망각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기 쉽다는 주장에도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내용은 열전도 유체시장에서 다우가 몬산토를 이긴 전략에 관한 것이었다. 미래에 화학 공학 엔지니어가 될 학생들을 먼저 교육시켜 그들이 현업에 있을 때 자연스럽게 다우 제품을 선택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잠재고객에게 먼저 교육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향후 구매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건 많은 B2B 업체들이 선택하는 접근 방식이긴 한데, 아예 이렇게 학생들에게까지 마케팅 아닌 마케팅을 했다는 내용은 신선했다.


저자의 말처럼 결국 어떤 독점도 천년만년 갈 수는 없다.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아주 작은 시장을 독점하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규모가 큰 시장에서 가장 대중적인 고객들이 원하는 제품 라인을 생산하고 그 시장에서 일정한 점유율을 유지하고자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작은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특별히 커스터마이징된 제품/서비스를 출시하고 운영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그 작은 시장을 독점해서 나오는 수익이 비용을 상회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상황적 독점은 언젠가 반드시 허물어지기 마련이니, 경쟁자가 들어와서 독점하지 못하게 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 시장에서 언제나 발을 빼는 선택을할 수는 없는 노릇일 거다. 이미 투자한 비용도 상당하고 어쨌든 일정한 현금이 거기서 발생하고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독점을 창출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과점이나 경쟁 시장에서 버텨나가거나, 시장에 진입한 경쟁자를 내쫓기 위한 전략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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