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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Apr 25. 2024

플랫폼답게 플랫폼 만들기

마셜 밴 앨스타인, 『플랫폼 레볼루션』

부끄럽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플랫폼과 파이프라인 기업의 차이를 생각해보게 됐다. 미디어 분야에서 게이트키퍼가 있는 전통 언론과 누구든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SNS의 차이는 알고 있었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이같은 차이가 적용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플랫폼 회사을 다니면서도 플랫폼의 본질이 뭔지 몰랐던 것이 아닐까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인 편견으로는, 재화의 교환은 그 자체로는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상인들의 거래는 세상을 바꿔놓았다. 거래가 일어난 덕분에 재화와 서비스는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곳에서 높게 평가되는 곳으로 흘렀고 우리가 다 알다시피 세상은 참 많이도 바뀌었다.


그런데 플랫폼에는 이 거래의 양과 폭을 뒤흔드는 힘이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서비스와 상품이 오가면서 사람들은 더 많은 콘텐츠와 상품을 소비하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떠든다.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뽐낼 수 있는 창구가 생기자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똑똑해지고 더 재밌어진다. 새로 열린 공간에서 전에 없던 사회적 갈등이나 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야말로 세상을 바꿔놓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왜 우리 회사의 플랫폼은 요새 성장이 더딘지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네트워크 효과가 너무 약하다는 거였다. 핵심 기능인 예약, 필터, 리뷰 기능 등은 작동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상호작용이 없다. 무엇보다 공급자들을 잘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공급자용 도구를 제공하는 어드민 페이지는 업데이트를 안한지 꽤 되었다.


지난해에는 뭔가 새로운 걸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회사에 많았다. 안타깝게도 기존 플랫폼에 새로운 상호작용을 추가하면서 충성고객을 늘리는 데에는 별로 집중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아예 새로운 플랫폼을 만드는 데 더 많은 리소스가 투입됐다. 짜장면 한 그릇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서 짬뽕이니 탕수육이니 메뉴만 늘린 꼴이다.


마음이 급해서일까. 플랫폼이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종종 파이프라인 회사의 방식으로 돌아가곤 하는 것 같다. 참여자들이 더 양질의 콘텐츠를 공급하도록 유도하기보다는 MD들이 직접 상품을 소싱해오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에 빈약했던 필터 기능을 크게 업데이트 하면서 유저와 상품 간에 좀 더 효율적인 매칭이 일어날 수 있게 했다는 거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유저들이 모두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플랫폼은 플랫폼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공급자들이 자신의 브랜드와 콘텐츠를 더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UI와 도구를 제공하고, 수요 사이드에서는 유저가 관심사에 꼭 맞는 콘텐츠를 찾을 수 있게 CRM을 강화해야할 것 같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부지런히 잡아두지 않으면 안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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