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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바라 Aug 28. 2021

<해리봉의 영혼탈출> #16. ♬너만 있어주면 돼~ ♬

#16.♬ 화려하진 않아도 꿈 같진 않아도 너만 있어주면 돼~ ♬


   두 동강 난 각시탈을 소중히 들고 인사동으로 갔다. 내 예상대로 인사동에서 각시탈을 팔던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깨져버렸으니 이제 어떻게 다시 돌아가지? 원래대로 돌아가야하는데”


   엄마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나도 눈 앞이 하얘진다. 난 초등학생 봉해리가 좋은데, 너무 빨리 어른이 되는 건 싫단 말이야. 이제 온라인 수업에도 익숙해졌고, 주 2회 학교에 가다가 2학기 때부터 드디어 전면 등교를 할 수 있어서 친구들 만날 생각에 들떠있는데, 나보고 또 엄마 몸으로 회사에 가라고?


   처음 엄마와 영혼이 바뀌었을 땐 얼떨떨하게 하루를 보냈고, 그 다음엔 하루만 잘 보내면 각시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각시탈이 깨져버린 지금, 다시 내 몸으로 못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하다.


‘다시는 못 돌아가면, 난 계속 엄마로 살아야 하는 건가?’

‘내 친구들 다시는 같이 못 노는 거야?’

‘어린이 봉해리의 삶으로 못 돌아간다고?’

‘새벽에 일어나서 매일 샤워하고 머리 감고 회사를 다니고, 퇴근해서 저녁 차리고 설거지 하고 빨래하고 청소 하는 엄마로 살아야 한다고?’


   지난 번에 엄마랑 극장 가서 본 <루카>가 생각난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인데 주인공 루카가 겁 먹을 때마다 친구 알베르토는 “실렌치오 브루노!!”라고 외친다. 이탈리아어로 “조용히 해! 브루노!!”라는 뜻이라는데, 브루노가 누구냐고? 브루노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겁쟁이다. 처음으로 혼자 방에서 잠들 때, 2학년이 되면서 혼자 학교에 갈 때, 자전거를 처음으로 탔을 때 등등 내가 겁 먹는 순간 튀어나오던 작은 마음. 영화에서는 그럼 마음에 브루노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용히  브루노!” 자신감을 잃었을  용기를 불어넣는 주문이다.


   바로 지금 나에게 필요한 주문, “실렌치오 브루노!”


   정신을 가다듬고, 곰곰히 생각해봤다. 내가 잘하는 것을 이용해서 각시탈 할아버지를 찾을 단서를 찾아보자.


엄마, 혹시 구글에 각시탈, 인사동, 할아버지 이렇게 검색어를 넣어서 찾아볼까? 뭔가 단서가  만한  찾을지도 몰라


“으응.. 그래 그렇게라도 찾아보자. 여기에서는 못 찾을 것 같아. 여기 상인들한테 물어봐도 모른다고 하구”


   엄마와 나는 각자 휴대폰으로 구글링을 시작했다.


엄마, 인사동, 할아버지, 각시탈로 검색했더니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프로그램이 나오네? 할아버지가 여기 출연하셨나?”


“어디보자… 출연하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떤 할아버지가 인사동에 놀러온 외국인들을 도와준 적이 있는 것 같아. 흠.. 그 할아버지가 인사동 거리에서 각시탈을 팔고 있으셨다고 하네? 일단 그 프로그램 좀 다시 봐야겠다”


   바로 유튜브와 웨이브 어플로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프로그램을 뒤졌다. 이런   편리하다. 엄마는 예전에 놓친 TV 프로그램이 있으면 방송국에서 재방송 해줄 때까지 기다리거나 친구 중에 비디오에 녹화해 놓은 사람이 있으면 빌려보거나 그랬다는데신기하다. 그렇게 기다려서 보는 프로그램이면 얼마나 간절하고  재미있었을까? 지금 우리는 조금만 보다가도 재미 없으면 바로 꺼버리는데


   간절한 기다림, 지금 엄마와 나에게 필요한 태도다.


“어?? 진짜 할아버지가 여기 나오셨네!! 해리야 이거봐”

“어?? 이 할아버지가 맞아!!”


   휴대폰  할아버지는 인사동에서 길을 헤매는 외국인들에게 유창한 영어로 친절하게 길을 설명해주고, 지하철을 타야한다면서 종로3가역을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결정적인  마디를 더하셨다.


내가  1호선을 이용하거든. 우리집이 천안라서~”


   유레카!!!! 찾았다!!!! 각시탈을 판 할아버지가 천안에 사시는구나! 일단 할아버지에 대한 단서를 찾았으니, 나머지 단서를 더 찾으면 된다.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리야, 다행이다. 이제 할아버지를 찾을  있을거야!!”


근데 엄마 천안에 가면 진짜 할아버지를 찾을  있을까? 할아버지를 찾으면 각시탈을 다시   있을각시탈에 신비한 힘이 있다는  할아버지가 알고 계실까?”


“해리가 궁금한 게 많구나. 할아버지를 만나면 차근 차근 물어보자. 일단 지금 우리에겐 단 하나의 단서 밖에 없으니까 어떻게든 부딪혀봐야지! 천안까지 빨리 가보자”


   엄마와 나는 서울역에 가서 KTX 타고 30분만에 천안아산역에 내렸다. 오랜만에 타는 기차라 잔뜩 기대했는데 천안아산역은 가까워도 너무 가까웠다. 내리기 싫은데…기차 탄 김에 여행 가고 싶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기차 타고 강릉에 당일치기 여행도 자주 다녔다. 토요일 아침 일찍 서울역에 가서 기차 안에서 아침으로 간식도 먹고 아이패드로 영화도 보고 중간에 화장실도 다녀오면 금방 강릉역에 도착한다. 택시 타고 안목해변으로 가면 점심도 먹기 전에 동해 바다를   있다. 아빠가 들고온 텐트를 모래사장에 펼치면 엄마는 텐트 안에서 누워있고 아빠와 나는 바다에서 실컷 놀았다. 텐트 안에서 먹는 컵라면이 얼마나 꿀맛인지!  


   텐트 안에서 바라본 바다는 커튼을 친 것 같다. 양쪽 커튼 사이로 하늘과 같은 색의 바다가 맞닿아있다. 다양한 생명이 가득한 바다,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가득한 바다. 여러 가지 생물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곳.


   하루의 대부분을 네모난 아파트와 비좁은 학교와 학원 건물만 오가다 보니 이런 탁 트인 바다에 나오면 가슴이 뻥 뚫린다. 숨을 들이마시면 가슴 속이 넓어진다. 바다에 자주 오고싶은데 서울에서 바다를 보려면 적어도 한 두시간 쯤은 차를 타야한다. 어서 빨리 코로나가 끝나서 KTX 타고 자주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  


   천안아산역에 내려서 엄마는 안내소로 향했다. 설마 누가 각시탈 파는 할아버지를 알겠어? 라고 생각하자마자 엄마가 활짝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해리야!! 희망이 있어! 여기 아침마다 각시탈을 들고 할아버지가 오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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