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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poom Apr 23. 2016

세상과 개인의 조우

책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세상이란 사실 개인인 것 아닐까. (민음사, p.93)

'세상이 벌할 거야, '라는 일말의 도덕적 양심을 뜻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그 말은 사실은 이런 것 아닐까요. 타인의 해맑은 미소 뒤의 냉랭한 조소, 혹은 상냥한 호의에 숨겨진 실속을 계산하는 치밀함과 같은 그런 이중성과 그 밖의 인간의 여러 복잡하고 양가적인 속성을 혼합한 데서 우리가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비롯한 환상은 아닐는지요.


하지만 세상은 실제로는 개인에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그 세상이란 것에 적당히 비위를 맞추며 순간의 투쟁에 승리하면 되는 것이고, 때로는 아주 운이 좋으면 법에 저촉되지 않는 이상 뻔뻔하게 행동하며 살아도 우리 삶에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단지 '세상'이 보내는 알쏭달쏭한 의문스러운 표정에 자연히 속으로부터 올라오게 되는 머쓱하고 민망스러운 감정을 자기 자신이 견딜 재주만 있다면 말입니다. 사실은 벌이란 것도, 우리를 훈계하는 것은 세상이 아닌 개인이라면 그렇게까지 세상의 벌이라는 무거운 압박의 단어를 쓰면서까지 공포를 느껴서 제 자신을 숨길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이 그간 풍겼던 거대한 총 집합체라는 그 위압감에 기죽어서 불필요하게 눈치를 보며 때때론 과한 죄책감에 시달린 인간실격 속 지난 요조의 세월이 가엾게 느껴질 지경입니다. 그래서 세상이란, 우리가 그 안에 속해있다 믿지만은 정작 확실히 보장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가 않는, 그러니까 개인이라고 할 만큼 아주 좁은 신화적 공간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문제는 가볍게 바뀌지요. 필연적으로 고독한 우리의 존재, 가엾은 우리는 그 무엇으로 위로받을 수 있을까요.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아 사실상 세상의 지탄이라는 형벌은커녕 자그마한 관심조차 받기 어려운 철천지 외톨이인 우리의 존재는 너무나 고독할 텐데요. 그래서 저는 요조의 독백 속에 녹아있는 처절한 쓸쓸함이 애틋하고, 또 남몰래 공감이 가곤 하나 봅니다. 그리고 요조에 투사된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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