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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 사는 로젠 Dec 07. 2023

09_거기가 세상의 중심?

ㅣ뉴욕이ㅣ


    멀더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 뭐 잘 도착했다는 둥 뭐 한국에 있을 때 감사했다는 둥 이런 이메일이 없었다.  그런 연락을 기대한 것을 보니 이럴 때는 또 내가 한국 사람이구나 싶었다. 제자가 먼저 스승님에게 연락해야지! 그게 외국인에게도 통할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고 내가 먼저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당시 내 주변에서 대학동창들서부터 미국을 갔다 와본 사람들이 수두룩했는데 미국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냥 먼 나라라는 느낌밖에 없었다. 그래서 도착이나 제대로 했는지 그런 자잘한 것부터_멀더가 구사하는 말과 읽기가 일치하는 않는 지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앞으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나 이메일로 물어보라 뭐 그런 취지의 메일이었을 것이다. 대단히 한국적인 마인드다. 당시 나의 직업적 습관상 그랬다. 떠나가고 사라지는 것은 그냥 둬야 하는데 그때 나는 그런 것에 얽매여 있었다. 헤어지기 전에 알려준 멀더 이메일은 무려 야후(yahoo) 메일이었다. 지금의 구글 G처럼 누구나 야후(yahoo) 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모르긴해도 이메일 주소가 독특했다. 볼티모어는 쩔어요!


    나는 멀더와의 수업적인 부분에 있어서만은 언제나 진지했는데, 내가 엄청난 의미를 부연한 존재 한국어 학생 1호인 멀더와 나 사이에 벌어지는 일은 언제나 콩트 같았다. 나는 이메일의 본문을 한국어로 쓰고, 마지막에 통상 문화적으로 그런 문구를 단다는 지인의 조언을 들어 'love you'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로 마무리했다. 뭔가 고색창연한 빛이 숨어있을 것 같은 볼티모어라는 주소를 입력하고 엔터를 눌렀다. 요즘처럼 수신 확인이 안 되던 시절. (수신확인이 안되니 읽고 답을 안해? 하는 편보다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이메일이 갔는지 주소가 맞는지 알 수 없던 시절에 답장은 오지 않으니 얼마간은 답답했다. 그런데 또 그러고 말았다. 우리나라 학생들도 학원 떠났는데 뭐 질문할 것 있으면 연락해하면 그냥 인사치레로 받지 않나.   

    시간이 한 참이나 지난 후에 멀더의 답변이 오기는 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답변은 매우 짧았다. "I love you, too." 엥? 실체가 없는 문장에도 감각은 존재하는지 '아이 러브 유 투(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을 읽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왔다. 역시나. 멀더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내가 구구절절하게... 까지는 아니더라고 진지하게 쓴 한국어는 네모 세모 물음표 등등으로 외계 문자로 보였다는 설명이 이메일 한참 밑에 덧붙여져 있었다.


   한국어가 안 떠? 그 선진국에? 뉴욕이 세상의 중심이라며? 우리는 영어 한국어 일본어 한자까지 다 보이는데? 믿을 수가 없었지만 사실이었다.  유학을 다녀온 사람에게 물어보니 한국어 키보드가 없으면 한국말이 안 보인단다. 그게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이해도 못했다. 멀더가 11월 말에 미국으로 돌아가고 내가 일주일 후에 이메일로 안부를 묻었다. 나의 이메일을 수신하고 내용이 몹시 궁금했던 그는 그 한국말을 읽어보기 위해 사팡팔방으로 해결책을 찾아보았으나 뉴욕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현실을 그제야 파악하고 당시 나에게 알려준 멀더의 미국집 주소로 나는 한국어 키보드를 보냈다. 비행기로 가면 3일 안에 받는다. 그런데 내가 보낸 한국어 키보드는 멀더의 이른바 본가 볼티모어로 가 있었고, 뉴욕에 살고 있던 그는 내가 보낸 한국어 키보드를 그로부터 한참 후에 받았다. 크리스마스 때 볼티모어 집을 방문해서야 받을 수 있었다.

    아니 부모님 집 떠나서 뉴욕에 살고 있으면 뉴욕집 주소를 알려줘야지, 일 년에 한 번 가는 본가 집 주소를 알려주니?... 해서 한국어 초급자 미국사람이자 체코사람인 뉴요커 제이슨은 2003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한국어 키보드를 받았다.

                                                                




                              

2000년대 PC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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