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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 사는 로젠 Dec 18. 2023

루이스의 장(章)

프롤로고_돈 키호테의 후예

시가 나를 찾아왔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겨울에서인지 강에서 인지...

-『시』,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어학 카페에서 한국어 수업을 시작한 2003년 12월, 나는 두 번째 외국인 학생을 만났다. 미국인 첫 번째 학생이 돌아가고 2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이 아직도 우리 곁을 맴돌고 있듯, 붉은 악마 응원단복이 연상되는 빨간 옷을 입고 있었다. 한국인 친구와 함께 그가 수업을 신청하러 왔을 때 접수를 받을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왔다는 루이스는 한국말을 이미 잘했다. (스페인 사람이라니...) 나와 대화를 하는 데에 걸리는 문제가 없었다. '언제'가 무슨 뜻인지를 한참 생각하던 첫번째 학생과는 이미 다른 차원에 있었다. 게다가 모 대학 어학당에서 중급 과정을 밟고 있단다. 어학 카페의 한국어 수업을 찾은 이유는 한국어 대화 연습이 필요해서란다. (아 그렇군요.)


   당시 그 어학 카페의 한국어 프로그램의 장점은 외국인 한 사람에게 한국어 자원봉사자 한 사람을 붙여주었다는 것이다. 어학 카페에서 한국어반을 처음 생각하신 주인장의 외국 생활 경험에서 우러난 결과다. 일대일로 담당 선생님이 있으니 배우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외국인이 주말이 아니라 평일을 원한다면 또 평일에 자원활동하시는 선생님을 연결해 주었으니, 이런 시스템을 국가지원으로 운영하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스페인에서 왔다는 학생에게 이런 운영 방식을 알려주니 활짝 웃으면서 좋다고 했다. 갓 초급 단계를 벗어난 멀더하고 정확하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던 나로서는 유창한 루이스의 한국말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한국어를 공부한 것일까가 궁금해졌다. 

   

ㅣ스페인 사람이자 마드리드에서 온 루이스ㅣ 


    나는 그의 전화 번호를 받고 이메일 주소도 알려달라고 했다. 그가 이메일 주소를 불러 주는데... 산초_키호테란다. (Sancho-Quijote) 산초 키호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 한 두 단어의 이상한 조합은 무엇인가... 키호테라는 철자를 받아 적을 때 약간 헤맸다. Q는 왜 소문자로 q로 쓰게 되었나? 다른 글자들은 소문자나 대문자나 비슷한데! 게다가 영어 철자만이 유일한 외국어 알파벳으로 강박을 가진 나로서는 키호테의 '호'발음은 'ho' 여야 맞는데 'jo'라고? 순간 적응이 안 된 탓이다. 유럽에서는 <j> 발음이 <ㅇ>에 가깝다. 아 여기는 또 새로운 세계구나. 여러 번 철자를 확인하고 수정하다 보니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름이 있었다. 『돈 키호테』의 '키호테'도 철자가 이러냐고 내가 물었다. 루이스는 갑자기 반가운 듯  "네!" 이러면서 아까보다 더 밝게 웃었다. 돈 키호테(Don Quijote)를 아세요?


   그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소설 제목이라면 안다. '그 이름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을 거에요'라고 내가 말했다. 세르반데스의 돈 키호테_ 어느 말이 제목인지 작가 이름인지 구별이 안 되는 나이에 필수로 읽은 청소년 판 돈키호테. 『동키호테』에서 『돈키호테』로 어느 사이 『돈 키호테』로 바껴왔다. 그 작품 제목의 변천사를 누가 연구한다면 또 한 사회의 변화가 보일 수도 있겠다. 나보다 윗 세대는 지금도 주인공 이름이  '동키호테'로 네 글자가 이름이라고 알고 계신다. 나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중남미 문학 작품에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데다, 학교 교과를 다루는 직업을 가지다보니 오류를 수정할 기회가 있었다. 돈 키호테의 돈(Don)은 신분을 나타내는 말, 더군다나 주인공의 본명도 아니고 별명이다.  앞서 반년 전에 분식집에서 멀더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학창시점 억지춘향으로 페이지만 넘기면서 읽은 책들 그래도 제목이나 등장인물은 알고 있게 되었구나. 세계 교양 시민으로 최소한의 지식을 겸비하게 된?. 풋.


   산초가 돈 키호테의 부하인 것은 안다 덧붙이니 루이스는 더 크게 웃었다. 내가 '이메일 주소가 (문학 작품의 등장인물로 삼은 것이) 매우 재미있다'라고 하니, 내 말은 아랑곳없이 루이스는 신이 난 듯 질문을 이어간다. "그러면 키호테 경이 타고 다니던 말 이름도 알고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웬일이니...) 말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그런 속말을 하며, 아니 제가 (졸리는 소설의) 말이름까지 기억할리가 하며 그의 얼굴을 보니 희한하게 단어가 스쳐간다. ...로... 어쩌고인가?라고 혼잣말을 하듯 떠올리니 '로시난데' 란다. (아하, 그래 맞다) 그 질주하는 키호테 경을 만나 개고생을 한 말(horse)이 로시난데였구나. 이 만남이 꽤나 흥미롭네 하는 생각이 스쳤다. 동시에 그는 나보고 스페인을 많이 안다고 했다. 소설 주인공 이름을 기억한다고 스페인을 아는 것은 아니지 않냐. (외국인이 춘향이와 방자와 이 도령을 안다고 해서 한국을 다 아는 것은 아니듯이...)라고 당시 나의 까칠함으로 대구를 하니...이 외국인 또 그게 그렇게 반가운 반응인 듯 뭔가 계속 대화를 이어갈 태세였다. '돈 키호테가 사랑했던 여자 이름은요...' 그쯤에서 나는 못 들은 척 하고 티나지 않게 말을 덮었다. '담당이 정해질 때까지 2주 정도 시간이 걸리니 그때쯤 여기로 다시 오시면 된다'라고 대화를 중단시켰다. 미국보다 더 미지의 땅에서 날아온 루이스와의 첫 퍼즐 맞추기를 끝냈다. 문학 작품이름도 아니고 등장인물 맞추기라니...


   내가 나의 이메일을 'bangja_leemongryong 방자 이몽룡'이라고 이름 지을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자신의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과 세르반데스에 대한 존경이 대단하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처음 만나는 외국인에게 신변 잡기를 물어보지 않는 편이라, 그가 문학을 전공하였을까? 하고 상상해 볼 뿐이었다.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 칠레의 시인

*커버: 마드리드, 스페인 광장 (Plaza de Espana) 2006.

*프롤로고(prólogo): 서문, 들어가는 말, 시작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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