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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 사는 로젠 Jan 16. 2024

멸종된 공룡이 나를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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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 자연사 박물관에서 l


   토요일 한국어 수업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루이스가 자연사 박물관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서로 간에 그다지 친숙해지기 전이었다. 도 아니고 민속촌도 아니고? 소설 주인공을 본인 이메일로 사용하는 양식을 보면 이런 예상밖의 장소 선정이 그에게 어울리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내가 봉사활동하듯 한국어 수업에 나가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매주 한 번, 토요일 오후 2시에는 거기 있었다. 금요일 밤까지 본업을 하고 토요일에 일찍(?)부터 움직여 그 시간을 지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개인사정이 있으면 수업을 취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인데 굳이 내 사정을 앞세우려 하지는 않았지만 한 주도 쉬지 않고 참석하는 경우는 휴식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런 야외수업(?)이 나에게도 나름 머리 식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생각해서 승낙했다. 토요일 오후에 놀러 가는 듯한 기분은 길고 긴 언덕길을 올라서 자연사 박물관 입구에서 공룡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때까지만이었다. 


ㅣ함부로 따라 나설 일이 아니다.ㅣ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면 거대한 공룡 모형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 가로길이가 일반 카메라 렌즈에 한 번에 들어오지 않았다. 루이스는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경우 피사체를 여러 장으로 나누어 찍었다. 그런 다음 사진 편집기에서 각장의 사진을 연결해서 본인의 블로그에 게시하였다. 간단한 방식으로 재밌는 결과물이 나왔다. 루이스가 퍼트린 방법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나중에 인터넷상에서 이런 식으로 찍어 올린 사진을 자주 보았다. 

   박물관은 3층으로 전시실은 주제별로 구성돼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눈으로 둘러보면서 한 두 가지 어휘를 설명해 주었다. 전시물에 붙은 설명이, 간혹 나에게도 어려운 단어들이 있기도 하였고 그런 단어들은 쉬운 말로 풀어서 알려 주었다. '원래 우리의 한국어 수업 2시간인데 종종 이렇게 보내도 나쁘지 않겠네요.'라고 말하려는데... 루이스가 메모지를 꺼내더니 적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더 자세히 더 정확하게 모든 어휘를 이해하고 싶어 했다. 지금 자신이 제2 외국어로 배우는 말이 눈앞에 있으니 모든 것을 다 알고야 말겠다는 욕망이 불타올랐다. (아뿔싸. 박물관에는 함부로 따라나설 일이 아니다.) (어쩌면 루이스도 그저 공룡 보러 왔다가 한국어 한자말의 늪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 


  공룡(恐龍) 1. 명사.  동물.  중생대 쥐라기백악기에 걸쳐 번성하였던 거대한 파충류통틀어 이르는 말. 몸의 길이가 30미터에 달하는 것도 있고 육상에서 살았다. 화석에 의하여 400여  이상이 알려져 있다.


   전시장의 설명이 대부분 한자어로 된 것들이다. 학명(scientific name)도 사실 영어로 더 이해하기 쉬운 말이다. 그런데 학명이 원래 말하고 한국어 표기법이 야릇한(?) 것들이 있다. 야릇하다는 것은 어찌하여 말이 이런 한국어가 되었나 하는 의문을 가져오는 말들이 널려 있었다. 공룡부터가 실제 발음은 '다이노소어르(dinosaur)'에 가까운데 한국어로는 디노사우르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공룡 전공자가 아니니 그 사정을 알 수가 없었고, '이 말이 곧 한국어로 이 말이다'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냥 루이스가 대충 지나쳐 가기를 바랄 뿐! 나는 머리도 아프고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인간의 진화는 5백만 년 전에 이르렀다. (아니 지금 2천 년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는 게야.)


   ‘멸종된 공룡이 나를 잡네’ 내가 중얼거렸을 뿐인데, 한국어가 이미 4급을 향해 가던 루이스는 정확히 들었다. "선생님, 지금 하신 말이... 멸종이요? 그 단어를 제가 저기서 본 것 같은데"... 하고 지나온 데로 다시 나를 이끌어 간다. 공룡별로 멸종 시기가 표시된 곳까지. "이거 맞아요?" (엉, 다시 몇백만 년 뒤로 왔네) (이쯤 되면 나도 힘들다. 그러나 나에게는 사전이 있지요)

   '네, 한자말인데요. 그게…' 그러면서 주섬주섬 사전을 찾아 보여 준다. (너는 디카는 있고 사전은 없네) 한자어는 사전만이 살길이다. 그렇게 멸종하나 해결하는 데 20분 이상 걸렸다. 나는 지나온 전시장을 가로질러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뒤를 돌아보면 루이스는 느릿느릿 보고 또 보고 메모지에 적고 다시 확인했다. 그놈의 공룡이 멸종하고 한반도 판이 떨어져 나가 일본이 되는 시기에 이르자, 나는 정말 기진맥진해 있었다. 다리가 아픈 것보다는 머리가 터지게 아팠다고.


ㅣ돈키호테 후손의 전공ㅣ


   장장 4시간에 걸친 루이스의 학구열에 넋이 나간 나는, 헤어질 때 '전공이 뭐냐'라고 물었다. 그 질문을 받고 루이스는 크게 웃었다. (너도 양심은 있구나) 스페인어로 지질학이었던가 지리학이었던가. (좌우지간 공룡하고 관계없네) 그런데 웬 공룡? 하니 루이스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공룡 좋아해요"... 앞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겠구나... 나는 왜 그 순간 그가 살아있는 돈 키호테라는 느낌을 받았을까. 



케녹스 필름카메라 Z130S (2004년) 

                       나는 그날 필름카메라를 가져갔었는데, 루이스 방식으로 나누어 찍어 봤다. 

                                    따로 찍은 사진 두 장을 연결하니 어긋나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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