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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성 Dec 31. 2017

‘다말’의 의로운 파격

"그녀가 나보다 의롭도다." 시대를 넘어선 분별

한 해가 저무는 계절, 올해도 참 많은 결정을 했고 분별을 위해 몸부림쳤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만나, 이 보잘것없는 내가 엄청난 하나님 나라에 속했다는 것을 깨닫고 기쁨으로 다시 세상 속으로 뛰어들지만 여러 갈래의 길 앞이 혼란스럽기만 한다.


컨설팅을 하는 직업 특성상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으면 그 일을 해도 될 일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많다. 기도와 말씀으로 분별을 하려 해도 다윗도 블레셋 군대로 피신해 이스라엘과의 반민족적 전투에 참전하려 했고, 모세도 물을 내라는 민족의 아우성 속에 반석을 두 번 치며 혈기를 드러냈을진대 하물며 생초보인 나로서야 얼마나 잘못된 결정이 잦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분별을 기도하던 때였다. 내 기준이 아닌 하나님 기준으로 일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던 때, 이 겁에 질려있었을 미망인 ‘다말’이 성경 속에서 나를 만나주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은 이 시대 관점으로 보면 발칙한 불륜의 인물이다.

죽은 남편과 그 형제들에게 씨를 받지 못한 이 여인은 시아버지에게 창녀의 모습으로 접근해서, 소위 몸을 팔아 유다 혈통의 대를 이었고, 그 용서받지 못할 것 같았던 매춘 행위는 훗날 다윗의 3대 조모로 세워지는 결과로 이어지며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당당히 기록된다.


그녀는 대체 어떻게 이런 파격의 도발을 했고, 자칫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던 걸까?

이 사건에서 나는 다말이 창녀 시늉을 하며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을 하기 전, 유다에게 요구했던 보증물 ‘도장, 끈, 지팡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도장’은 아이덴티티를 식별할 수 있는 ‘약속’, ‘지팡이’는 책임과 ‘권위’를 상징하는 징표 같았으나 ‘끈(팔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의미가 궁금해진 나는 성령님이 친히 가르쳐주시기를 기도했다.

할렐루야! 다음날 우연히 듣게 된 방송에서 마침 이 본문으로 한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는데 “끈은 당시 화폐의 기능이었습니다.”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다말이 요구한 보증물은 다름 아닌 약속, 대가(代價),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유다의 신분과 행위, 처지를 드러낼 모든 증빙이었다.


이로써 나도 ‘하나님 나라에 속한 일’로의 확신이 어려울 때면 이 ‘다말’의 보증물 같은 여건을 점검하기로 했다.


1. 도장 - 확실한 계약, 

2. 끈(팔찌) - 적정한 대가(예산),

3. 지팡이- 업무를 맡아 위임받는 책임과 권한.


말씀을 이렇게 적용하는 데에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다마는(믿음의 선배님들 죄송합니다!), 내 어린 수준에서 ‘다말 따라 하기’는 큰 유익이 있었다. 이 조건을 점검해 걸러내다보면 집중해야 할 일을 선별함으로써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물론 확실한 감동으로 조건과 무관하게 저지르는 일들도 있다.)


이후 이 ‘다말’의 보증물은 더 깊은 묵상으로 인도해주기 시작했다. 


1. ‘도장’은 아가서와 에스겔서를 통하여 “너는 내 것이다”라는 ‘인 치심’으로, 

2. ‘끈(팔찌)’은 리브가와 라합을 통한 ‘언약의 증표’와 또 이사야와 바울을 통해 ‘진리와 공의’로, 

3. ‘지팡이’는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삶에 동행하며 개입해주시는 성령님께서는 새롭게 깨닫는 은혜를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분의 특별한 방법으로 날마다 더해주고 계시다.

Judah and Tamar, Rembrandt Harmensz. van Rijn.1606-1669

나중에 다말의 이 세 가지 보증물은 사형을 면하고 목숨을 건질 중대한 증거가 된다. 즉 유다의 인간적 배신과 시대의 가혹한 형벌에 ‘하늘의 법칙 ; 공의’가 적용되는 반전의 포인트인 것이다. 


“그녀가 끌려 나갈 때에 자기 시아버지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이 물건들의 임자로 말미암아 내가 아이를 배었나이다, 하고 또 이르기를, 

원하건대 이 도장과 팔찌와 지팡이가 누구의 것인지 식별해 주소서, 하니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녀가 나보다 의롭도다. 

이는 내가 그녀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로다, 하고 [창 38:25-26, KJV]“


종려나무, 기둥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다말은 쌍둥이 아들을 낳았고 그 이름이 베레스와 세라이다. 베레스는 breach(위반 침해 파손 결함)라는 뜻이 있고 세라는 rising(기상 소생 부활)의 뜻이 있다고 한다. 

‘위반을 통해 세워지는 부활’. ‘결함을 딛고 일어서는 소생’. 어쩌면 이 쌍둥이의 이름이야말로  다말이 백오십 평생을 위로받으며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할 힌트가 되지는 않았을까?


한 유럽의 인물 소개 사이트에서 ‘다말은 불의한 유다 가문에 들어와서 메시아의 계보를 잇기 위해 인간의 도리를 위반했지만 꺼져가고 망해가는 유다 집안을 다시 소생시키고 메시아의 혈통을 예비한 작은 영웅이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렘브란트는 ‘유다와 다말’이라는 작품에서 다른 화가들의 관능적인 묘사와 다르게 그녀를 단정하고 거룩한 숙녀의 이미지로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님 나라의 진리는 비천한 내 상식을 넘어선다. 그 이유는 세상이 처음부터 하나님 뜻을 온전히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일 거다. 인본주의적인 경험, 지식, 예측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시각과 마음을 깨닫고 경험하는 새 날들을 소망한다. 


예수님 다시 오신 후 만나고 싶은 언니들이 있는데, 이름 모를 나아만 장군의 계집 종 다음으로는 단연 ‘다말’이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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