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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Apr 12. 2024

힘든 순간에 '진짜' 도움이 되는 것

도로 표지판은 '어떻게'가라고 알려주지, '왜' 왔냐고 묻지 않는다.


예고 없는 불행이 찾아오면

감정은 밑바닥까지 떨어진다.


밑바닥의 나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가두고

내 안에 깊숙이 침전한다.


그러다 시간이 감정을 무디게 만들고

괜찮아진 감정이 다시 나를 걷게 하면


우울한 시기에 했던 경솔한 행동을 후회하고 

다음번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힘든 순간은 다시 찾아오고

괜찮았을 때의 다짐은 '또' 지켜지지 않는다. 




힘들 때와 괜찮아졌을 때의 감정은 다르다.


힘든 순간 필요한 건, 

괜찮았을 때 '다음번엔 이러지 말아야지...'가 아니다.


힘든 순간 나오는 '내 나쁜 버릇'을 아는 것과

그것을 수정하는 일이다.


움이 되는 책을 하나 알고 있다.

"임세원 교수의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임세원 교수는 우울증 환자였다.


"선생님은 제 병 몰라요..."


환자들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곤 하던 그가

갑자기 나타나 사라지지 않는 허리통증에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는 결국 우울증에 빠졌고

어떤 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죽을힘으로 발버둥 쳤고,

그의 책은 그 발버둥의 기록이다.


이 세상에 의사가 쓴 우울증에 관한 책은 많아도

우울증 걸린 의사가 쓴 우울증에 관한 책은 드물다.


한 사람의 눈물로 만들어진 책이어서일까

절로 감정이 실렸다.




힘든 순간을 잘 견뎌내는 방법은 

지켜오던 일상의 루틴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적당한 수준을 사기를 유지하려면 

적당히 긍정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답이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이런 긍정적인 경험조차 중단하는 것이다. 


친구와 전화로 수다 떨기, 동료들과 점심 먹기, 애완견과 공원산책하기 등. 

힘든 순간에 놓인 사람은 소소한 활동들을 모조리 다 끊어버린다.


반드시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삶의 요소들을 전부 없애면 삶에 즐거움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삶이라는 집합에서 부정적인 일은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다. 

이 조각 하나로 나머지 조각들을 없애버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힘들어지면 다 내려놓으려는 습관만 바꿔도

부정적 감정이란 골에 깊게 빠지지 않는다.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지?'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하고 물어야 한다.

  

원인을 찾아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 세상엔 많다. 

불면증은 원인이 없어져도 결과로 남는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내가 왜 이렇게 된 거지?"부터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 나 때문이야. 나 저 사람 때문이야. 아 저거 때문이야." 

자책하거나 원망만 한다면 늘 제자리다.


 거기서 끝이다. 

나아짐은 없다. 


임세원 교수는 '왜'보다는 '어떻게'라는 물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라 말한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는 뒤를 향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는 앞을 향한다.


힘든 상황을 벗어나려면 나아가야 한다.


힘든 일만 생기면, 허둥대는 사람은 

길을 잃고도 표지판을 보지 않는 사람과 비슷하다.


'왜'가 아닌 '어떻게'를 집어 들고

고갤 들어 앞을 보자.


눈 앞의 표지판은

'어떻게'가라고 알려주지, 

결코 '왜' 왔냐고 묻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은 

부르지 않아도 오는 겨울이다.

찾지 않아도 내리는 비다.


추운 겨울이 왔지만 운동을 계속하는 것처럼,

장마가 끝났지만 우산을 잘 보관하는 것처럼


일상을 지키고

다음을 생각하자.


별 것 없다.

힘든 순간 '진짜'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은


와야 할 것이 왔을 뿐이라 여기며

내 하루를 묵묵히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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