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거 필요한 건데!
"어, 이거 필요한 건데!"
언제부터인가 네이버를 켜면, 나에게 필요해 보이는 물건들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예전엔 여자 옷, 아기 용품, 지팡이(?) 같은 나와 별 상관없는 물건들이 광고로 뜨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브라우저 귀퉁이가 기가 막힐 정도로 '나라는 인간' 맞춤형 광고로 가득 찼다.
그런 광고 형태에 익숙지 않았을 땐 구매하고 이틀도 안돼 안 쓰게 되는 제품들에 돈을 쓸어 갖다 바치는 등, 개가 먹이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듯 지갑을 탈탈 털렸다. 분명 인터넷으로 볼 때는 쓸모 있어 보였고, 오래 쓸 것 같았는데, 사고 나면 방구석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한 번은 입에 물고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면 팔자 주름이 사라진다는 제품을 보고 "그래! 이거야!" 하며 구매한 적이 있다. 받자마자 두어 번 끄덕여보고 더 흔들다간 미쳐버릴 것 같아서 바로 "그래! 방구석에 처박혀!"를 시전 했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그 제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당근마켓으로 직행했고, 피 같은 나의 오만 원권 다섯 장이 가볍게 세장으로 바뀌는 놀라운 기적이 펼쳐졌다.
어느 현자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고 했던가? 방구석에 안 쓰는 물건이 쌓여가든, 당근 마켓 바겐 세일 목록이 늘어가든,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 이거 쓸모 있어 보이네? 헤헤! 저것도? 헤헤!'를 외쳐대며 마구잡이로 물건을 구입했다.
자잘 자잘한 돈 주고 하는 쓰레기 수집을 반복하다가, 크게 한번 자괴감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내려치고 싶었던 제품을 집에 들인 적이 있는데, 바로 집에서 타는 헬스 자전거였다. 태블릿 게임 뭐랑 연동되는 헬스 자전거라길래 큰맘 먹고 거금 90만 원을 들여 구입했다. 피카츄가 진화하면 라이츄라 했던가? 헬스 자전거 진화하면 빨래 건조대였다. 진화까지는 딱 3주 걸렸다. 물론 헬스 자전거의 진화 과정은 건너 건너 알고 있었지만, 그 전설의 포켓몬을 내가 직접 잡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90만 원이라는 거금까지 쓰고 말이다.(일반 헬스 자전거는 15만 원이면 산다) 한 달 월급의 1/3 가량을 하늘에 뿌리고 나자 하늘이 노래지며, 나 자신이 미워졌다.
"어휴... 진짜 어쩌려고 그래!"
그날 이후로 내가 가장 경계하는 문장은 "어, 이거! 나 필요한 건데?"이다. 일단 이 말이 머릿속에 뜨는 게 포착되면 경계 태세 발동이다. 아무리 사고 싶은 제품이어도 아래 세 항목에 하나라도 "No"가 뜨면 다음날로 구매를 미뤘다. 신기한 건,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구매 욕구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동시에 이 세 가지 질문을 하고 나면, 사고 나서 쓰지 않거나 후회하는 제품을 상당수 거를 수 있었다.
1. 꾸준히 쓸 자신이 있는 제품인가?
2. 단순히 디자인이 예뻐서 구매하는 건 아닌가?
3. 상품을 제공받아 사용한 제품 리뷰가 적은가?
나라는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당장 쓰고 싶은 제품이고, 예쁜 포장지에 담겼고,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결제부터 해대는 부류였다. 브레이크가 필요했고, 그건 위의 세 가지 질문이었다.
몇 푼 없는 내 지갑을 노리는 기업들의 마케팅 기법은 날로 치밀해지고 있다. 팔요 할 것 같은 제품을 눈앞에서 '요거 필요하지 않아? 할인 오늘 끝인데? 헷?' 하며 흔들어댄다. 그러면 왠지 아직 받지도 않은 월급까지 끌어와 사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오! 오!!' 하다가 지갑도 털리고 마음도 털렸던 슬픈 지난날을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기고 싶다. 만약 당신의 지금이 예전 나와 같다면, 스스로를 지킬 브레이크 하나쯤 마련해 두는 건 어떨까? 얇고 귀여운 지갑의 안녕을 위해서.
기억하자. 경계경보다.
"어? 나 이거 필요한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