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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nc 블랑 Aug 25. 2019

좋은 전시, 그 순간의 좋은 영원

《변화구성》 전 by Texture on Texture


한정판은 늘 인기가 있다. 만나기 위한 무언가가 제한되어 있다는 특성은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심어준다. ‘전시’ 는 정해진 기간 안에만 그 공간에 존재하는 ‘경험의 한정판’ 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정된 재화를 즐긴다는 의식 없이 전시회장에 간다. 대개 나 또한 그렇다.
 
전시의 ‘한정판-적 속성’ 이 선명히 드러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질문을 바꿔 볼 까.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라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 그 기억이 어떤 전시에 관한 것이라면, 그 전시는 당신의 한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8월 9일부터 25일까지, 성수동의 공간 코사이어티 Cociety 에서 텍스처 온 텍스처 Texture on Texture 의 <변화구성 Varying Texture> 전이 열리고 있다. 스튜디오 텍스처 온 텍스처는 이 전시에 대하여 현장 리플렛에서 ‘텍스처숍에서 판매하는 정물들이 사진 속 주요 피사체이자 전시를 위한 오브제가 되고, 또 숍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되는 것’ 이라 설명한다. 자리 바꾸기, 다른 각도의 시선이 부드럽게 비려져 그 곳에 오래 살고 있는 듯이 머무르고 있다는 인상을 전시회장에서 받았다.
 
클라이언트의 시선으로부터 출발하게 되는 작업과 작업자의 시선으로 출발하는 작업을 병행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것을 어떻게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깊이 고민하고 있던 중 <변화구성>에 당도했다. 작은 도자기 위에 용과가 올라 있고 그 옆에 먼지떨이가 먼 남쪽 숲의 나무처럼 서 있는 족자 앞에 섰을 때, 텍스처 온 텍스처의 답을 보았다. 나무 지지대 사이로 들어온 빛 그림자가 전시장의 흰 벽에 추가됐다.
 
동선 곁으로 열려 있는 문 안의 파빌리온 공간에서는 바닥에 둥글게 모여 있는 아홉 개의 오브제, 다섯 발자국 즈음 떨어져 흔들리는 가느다란 나무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벤치에 앉아 있는 동안 공간 위 시원하게 개방된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이 아주 천천히 지나갔다. 늦은 오후의 해가 들 때마다 천정의 기둥들이 만드는 규칙적인 사선이 파빌리온의 벽과 바닥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아홉 개의 정물은 거기서 내내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는데 시계는 멈춰 있다. 나뭇가지가 살살 움직인다. 지금 여기에 이 모두가 존재함으로써 완성된다. 여기에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순간이다.
 
영원의 조건은 오랜 시간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그러나 일 분 일 초가 그 순간의 시작과 끝이라고 한다면, 그 안에서의 작은 영원은 존재하는 셈이다.
또한 인간의 영원은, 각자가 그 순간의 지속성을 바람으로써 불려지는 말이다. 너무 좋은 순간 속에서 사람은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고 이야기한다. 좋기 때문에, 좋기 때문에 우리들은 영원을 말한다.  
 
좋은 전시는 작은 영원을 많이 품고 있다. 전시장에서 보낸 시간, 작품과 눈을 마주하는 시간,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시간, 머물러 공기를 음미할 때의 시간. 파빌리온 안에서 날씨의 변화를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시시각각의 아주 짧은 영원을 모으고 싶었지만, 동시에 그것을 주머니에 담아갈 수 없기에 영원으로 원할 수 있음을 이해했다. 그 이해에 닿는 순간의 영원까지도 모두, 좋았다.



아름다운 구조의 천정 중앙으로부터 떨어지는 빛 그림자와 작품 족자들
다양한 오브제들 모두 단단한 맺음새를 지니고 있다.
족자 뒷부분에 모노크롬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다. 각 사진의 명암만 존재하는 하얀 세계에 텍스쳐texture 만 남아 있어, 그야말로 Texture on Texture의 세계.
파빌리온의 풍경. 아홉 개의 오브제는 멈춰진 시간같다. 해가 변하면 공간 구조를 따라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멈춰진 영원이 흐른다.


Texture on Texture <변화구성 Varying Texture> 전을 본 직후, Cociety cafe에서, 2019년 8월 24일


Soyeon Na, Blanc

노마드미술기자/아티스트


일간지 미술기자로 재직 후 퇴사, 세상 어디든지 사무실 삼는 '노마드미술기자' 로, 신문 디자이너이자 호기심 많은 미디어 콘텐츠 관찰자로 산 지 십 년 째. 일러스트레이션 아티스트로서 파리에서의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마치고 서울에 머물며 그림과 글을 만든다. 최근 영감의 원천은 여행과 케이팝, 좋아하는 단어는 '사랑'과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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