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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ia Apr 05. 2024

20240404_숭고한 흔적_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평소 알람을 꺼두던 단체톡방에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떴다. 함께 서울의 멋진 건축물들을 둘러보자는 거였다. 소모임이 뚝딱 만들어졌다. 건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콧바람도 쐴 겸 얼른 손을 들었다. 햇살 좋은 어느 날, 그렇게 결성된 다섯명의 멤버들과 함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충정로역 4번 출구로 나와 걸어서 약 400m , 서울 북서부 서대문구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서울에 살면서도 여기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장소였다. 좋은 건축은 황량한 곳에 생명을 불어넣기도 한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공원은 활기를 띄었다. 2019년에 공원의 지하공간이 지어질 때까지 사람들은 이 공원을 피했다. 공원에서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서울역 노숙자들이 이유였다. 구청은 공원의 노숙자들로 인해, 주민들에게 수많은 민원을 받았다. 공원 밑으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설립되면서, 공원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땅 밑으로 내려가는 지하 구조다. 박물관이 설립되기 전 지하 공간에는, 쓰레기 재활용 시설과 꽃시장 그리고 공공 주차장이 있었다. 지금은 도시가 운영하는 재활용 시설만 남아있다. 공원은 박물관이 지어진 해인 2019년에 ‘서소문 역사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원 한편에서 실제 사람크기 청동 조각품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캐나다 조각가이자 독실한 크리스천인, 티모시 슈말츠의 작품이다. 작품명 ’ 2013 노숙자 예수‘ 는, 예수를 공원벤치에 누워 있는 노숙자로 묘사했다. 이 조각품의 의미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가지라.’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곳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역사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에 소의문이라고도 불리었던 서소문은, 죄수들과 천주교인들을 공개 처형했던 장소였다. 1866년 병인박해를 포함하여 조선시대에 천주교인에 대한 네 번의 큰 박해가 이곳에서 일어났고, 많은 천주교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103명 한국 가톨릭 순교성인 중 44명이 서소문에서 처형되었다. 이곳은 순교자 외에도 1894년부터 1895년까지, 동학농민들의 처형장소다.

  서소문은 ’ 작은 서쪽 문‘이란 뜻으로, 조선시대에 주요 도로가 만나고, 큰 시장이 열리는 종점이었다. 공개처형과 고문당하는 모습을 많은 군중들 앞에서 보여주며 본보기로 삼았던 것이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세 명의 건축가에 의해 설계됐다. 그래서인지, 하나의 건물 안에서 세 개의 다른 공간을 만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박물관 내부의 어느 공간으로 들어가면, 신성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둘러싸이게 된다. 마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커다란 재단을 방불케 해 저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된다. 이곳을 설계한 건축가는 사람들이 처형되었을 때, 그들의 피가 땅에 스며든 것처럼, 자연 빛이 지하공간으로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순교자의 영혼을 위해 명상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헌정된 장소인 ‘위안홀’이다. 천장이 없는 붉은 벽돌 벽으로 둘러싸인 930제곱미터의 공간으로, 하늘로 이어지는 유리문을 통해 좁은 하나의 관으로 빛이 쏟아졌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전체적으로 붉은 벽돌,노출콘크리트, 자연부식된 강철이 주 재료다. 이유가 있는 걸까? 이곳은 짓는 데만 백만 개 이상의 벽돌이 사용되었다. 대부분 손으로 만든 벽돌과 노출 콘크리트로 설계되었는데, 벽돌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건축 자재이며, 천연 재료로 만들어진다. 벽돌을 쌓을 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일이 손으로 놓는다. 건축가는 이 장소가 죽은 자의 넋을 기리는 곳인 만큼,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 지기를 원했다. 종교를 떠나 빛과 어둠, 지구와 하늘이 공존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열린 공간이다.

   통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활짝 열린 커다란 문을 만나게 된다. 지하 2층에 위치한 이곳은 ‘성 정하상 기념경당’으로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과 주일에 미사가 열린다. 지상에서 일어난 참혹한 비극을, 지하에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죽은 자의 넋을 애도한다. 건물을 다 둘러보고 박물관을 나오는데, 마치 커다란 지하 돌무덤에서 세상밖으로 나오는 느낌이 들어 ‘오! 주여.’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따스한 오후 햇살을 맞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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