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에 몰린 사람들.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여 사회평론가를 꿈꾸던 내가 자영업자가 된 사실에 주변에 많은 지인들이 의아해 했다. 왠 갑자기 카페라는 물음에 나는 원래 해 보고 싶었다며 둘러댔지만 사실은 스스로 부끄러워 거짓말을 해왔다.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던 당시 언니의 결혼이 생각보다 앞당겨졌는데 여유가 있는 집안이 아니던 터라 내 대학원 진학이 내년으로 미루어졌다. 이미 준비를 다 해놓은 상태에서 등록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어린 나에게는 엄청난 좌절이나 다름없었다. ‘또 다시 준비를 해서 1년뒤에 가라고?’ ‘다른 애들은 대학원 들어갔을 테고 취직했을텐데 나만 뒤처지잖아’
지독하게 철딱서니 없게 스스로 학비를 벌거나 대출을 갚을 고생은 하기 싫고 내 처지만 한탄했다. 그때 방황하며 자주 갔던 곳이 바로 지금 내 카페다. 그 다음 모두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사장과 친해지고, 사장이 가게를 내놓을 건데 장사가 안 되서는 절대 아니고 개인 사정이며, 아가씨는 단골이니깐 내가 남들보다 더 싸게 팔겠다. 그렇게 경영공부 한번 한적 없고 창업에 관심도 없던 나는 2년치 석사대학등록금에 달하는 금액을 겁도 없이 대출받아 묻지마창업을 했다. 준비도 각오도 없이 현실도피형 어쩌다사장의 등장이었다.
그런데 이런 어쩌다사장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니다. 자영업의 세계에 입문하고 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준비가 부재한 상태에서 창업에 뛰어드는 것을 알았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방영되고 해당 업주들을 향해 어떻게 저렇게 준비도 안하고 장사를 하냐 라는 댓글이 쏟아졌다. 애석하게도 방송에 소개된 가게들이 아주 희귀한 케이스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 계획과 준비에 입각한 창업이 아닌,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떠밀려 창업에 뛰어들거나 충동적으로 창업을 시도한다.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 취업에 대한 막막함, 다가오는 퇴직 등 사람들의 막막함은 결국 “나도 장사나 해볼까?”로 귀결되며 수많은 어쩌다 사장들을 양성한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은 대부분 대안이 없어 이루어지는 생계형 창업이다. 원래 우리나라가 창업시장이 이렇게까지 과포화상태는 아니었다. 그런데 90년대 말 금융위기가 시작되며고 사회에 양질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자 많은 사람들은 특별한 기술 없이도 할 수 있는 외식업종을 중심으로 자영업창업에 뛰어들었다. 국민경제활동은 크게 취업과 창업으로 나뉘어 지는데 취업시장의 파이가 줄어드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창업시장에 유입되는 건 필연적인 결과였다.
금융위기의 여파가 가신 이후에도 일자리시장의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악화되어갔다. 그 결과 이른 퇴직을 맞이한 사람들에 취업난에 지친 청년들, 높은 노동 강도에 지친 직장인들까지 진입장벽이 낮은 자영업으로 쏠리는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원래부터 카페사장님, 고기집사장님, 치킨집 사장님이 목표이자 꿈이 아니라 다른 경제활동의 대안이 없어 창업을 결심하다보니 애초에 오래 준비할 기간도, 그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 더불어 애착도 없이 창업이 이루어져 준비가 부재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이루어진 안일한 창업은 대부분 험난한 레드오션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쓸쓸히 폐업을 맞이한다.
대학원 진학 좌절로 나는 크게 방황했다. 다시 1년 후 진학시험을 준비할 자신도, 갑자기 학비를 마련할 자신도 없었다. 그리 원했던 공부였는데 대학원을 졸업해도 어차피 취업이 쉽지도 않은 전공이라 가는 게 맞을까? 온갖 핑계 대며 그래 장사나 하자 돈을 벌어야지라며 창업으로 도피했다. 이런 안일한 창업에도 만분의 일의 확률로 하늘이도와 장사가 잘되기라도 했으면 모를까, 보기 좋게 첫날부터 망함의 기운을 느꼈으니 스스로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워 창업계기에 대해 늘 거짓말을 하며 알량한 자존심을 지켰던 것이다.
<이 매거진은 약 4년이란 기간동안 일매출 0원에서 140만원까지 성장을 담은 저의 창업 생존기입니다.
무분별한 창업시대에 방지턱이 되고자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솔직하게 썼습니다.
저의 창업에세이를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