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이틀째 되던 날 새벽부터 눈을 떴지만 도저히 출근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예상치도 못한 현실에 공포에 휩싸였던 나였다. 하지만 임대료는 꼬박꼬박 나가는데 어찌하겠나. 저조한 매출의 충격으로 현실이 공포였지만 그보다 돈이 더 무서웠다. 밥한 숟가락 넘어가지 않고 씻을 기력도 없지만 주섬 주섬 옷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섰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걸어가던 길 코너길에 있던 과일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5-60대의 우리 부모님 또래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열심히 과일박스와 야채들을 나르며 목청을 높여 장사를 하고 계셨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우리 부모님은 이일을 평생을 하셨구나.. 하기싫어도 책임감으로 하셨구나.
그 순간 나에겐 책임감이라는 생겨났다. 지금껏 살면서 내가 누구를 책임져야 하는 일은 크게 없었다. 그냥 나 혼자 내 할거 잘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창업을 하는 순간 나에게 가게는 내가 책임져야할 내 자식새끼와 같다. 아무리 하루 종일 손님하나 없는 가게여도 나한테는 소중한 내 새끼다. 힘들다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아무리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머릿속엔 최악의 생각을 하면서도 출근하는 길을 망설인 적은 없다.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일하신 부모님의 책임감에 비할 순 없지만 나에게도 끝까지 책임져야하는 존재가 생겼고 사명감이 생긴 것이다.
많은 사장님들이 장사가 안 되면 쉽게 영업자체를 하지 않는다. 하루걸러 하루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장사가 안되는건 생계의 위협 뿐만 아니라 내 자신이 외면받는 기분이라 비참해진다. 하지만 결과는 악화되는 길 밖에 없다. 아무리 버는 돈이 없을 지라도 장사는 내 선택이다. 선택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한다. 내 가게가 손님들한테 사랑을 못 받는다고 나까지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어쩌겠나. 내 새끼가 어디가서 손가락질 받는다고 나까지 손가락질 할 순 없다. 청승맞지만 새벽에 눈을 떠 출근할 엄두가 안나 망설이던 몇 시간을 생각하니 내 가게가 너무 가엾고 미안하고 그정도의 책임감으로 장사를 시작한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앞으로 울어도 내 카페에서 울겠다고. 손님이 있건 없건 내가 있어야할 자리는 이곳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약속은 계속해서 지켜졌다. 그날 나는 가게에 도착해 문을 열고 조용히 혼자말을 했다. '미안해 내가 널 두고 도망갈라 했다니.. 미안해..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