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워하는데 큰 에너지를 쓰며 사는 사람들에게
"평생 모르고 살 건가요? 당신도 모르는 엄청난 강점! 우리가 단 30분 만에 밝혀드립니다!" - 갤럽 강점 검사
사실 저런 소개문구는 없었다. 다만 모 유튜버의 영상에서 소개해주는 <갤럽 강점 검사>가 나에겐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는 뭘 잘하지? 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서른 넘도록 진로도 직업도 정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나의 딱한 사정을 알고리즘이 눈치라도 챈 걸까. 어느 날 구독도 하지 않았던 처음 보는 유튜버의 영상이 떴고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갤럽 강점 검사를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검사를 바로 하지는 않았다.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괜한데 돈 쓰는 것 같아 "나중에 해보지 뭐"하고 미룬 것이다. 그 이후로 1년 정도가 지났을까. 정말 까맣게 잊고 살다 불안감이 극도로 심해진 밤 불현듯 떠올랐다. "와, 지금이야. 나한테 지금 당장 필요해"라는 확신이 들자마자 빠르게 결제 후 검사를 진행했다. (사실 검사비가 8만 원이라서 빠르게 결제라는 말은 허세고 조금 망설였다.) 평소에 나한테서 좀처럼 보기 쉽지 않은 빠른 실행력이었다. 환율이 오르는 바람에 작년보다 2만 원이나 더 비싸진 검사를 했지만, 나 앞으로 어떻게 살지?라는 질문으로 가장한 불안에 달달거리며 밤을 지새우기가 더 싫었던 것이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밤의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다면 8만 원의 지불이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검사를 하는 내내 불편했다. 아무래도 외국 사이트라 한국어 번역이 시원치 않았고, 심지어 20초 안에 고르지 않으면 문항이 그냥 넘어갔기 때문이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빠르게 고르게 하려는 갤럽의 의도는 잘 알겠으나 작은 결정에도 많은 생각이 필요한 내 입장에선 난감했던 것이다. 하지만 돈값은 해야 했기에 "이게 대체 뭔 말이야?"와 "둘 다 해당사항 없는데?"라는 말을 실제로 내뱉어가며 최대의 집중을 발휘했다. 그래도 설레는 불편함이었다.
검사 자체는 불편했지만 결과에 대한 기대감은 문항을 체크할수록 샘솟았다. 평소 나는 스스로 잘하는 게 딱히 없는, 별로 쓸모없는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검사를 끝내고 나면 그런 좌절감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것도 굉장히 객관적인 지표를 기반으로 말이다. 이젠 더 이상 나를 쓸모없다고 생각하던, 형편없다고 여기던 상관없어. 나도 분명히 재능이 있다는 객관적인 지표가 곧 생길 거니까. 검사 내내 의기양양한 마음까지 더 해졌다.
갤럽에서 말하는 강점은 다른 뜻으로 '재능'이라고도 표현하는데, 30년을 넘게 살아도 찾아볼 수가 없는 내 재능을 단 30분 만에 발견해 준다는데 얼마나 설레는 일이겠는가? 이름 낯선 외국에 살고 계신, 이름 모를 머리 좋은 어르신들이 만든 검사 도구를 무한 신뢰했다. 숨겨왔던 나의 찐텐을 발견하게 되면 하하 유니버스가 펼쳐질지도 몰라. 그렇게 점점 증폭되는 기대감을 안고 삼십 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총 177개의 문항을 완료했다.
결과 보고서는 검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pdf 파일로 받아볼 수 있었고, 나는 오랜만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파일을 클릭했다.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소중하게 읽어야지! 그러나 웬걸. 한 글 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가는 내내 나의 설렘은 금방 퇴색되었다. "아 짜치는데..."는 보고서를 읽는 내내 실제로 한 말이었다. 보고서엔 너무 다른 나. 가 아닌 '너무 잘 알고 있는 나'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번역이 이상해서 잘못 이해한 거면 어쩌나 싶었는데 "거 되게 잘 이해했나 보네..."라며 조소를 띄었다. 기대도 않던 이상한 부분에서 (불필요한) 안도감을 느꼈다. (정말 불필요하게)
갤럽에서 정의하는 재능은 총 34가지로 그중 상위 5가지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재능이라고 한다. 전문가의 말을 빌려 쓰자면 숨 쉬듯, 너무 자연스럽게 쓰는 기능이라 스스로가 딱히 재능이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내 경우엔 달랐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나는 평생에 뭘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 내게 주어진 상위 5가지의 강점은 우습게도 평소 내가 제일 (진짜, 너무) 싫어하는 나의 모습들이었다. 그러니까 전문가의 말을 다시 빌려 쓰자면... 나에겐 숨 쉬듯 너무 자연스럽게 단점이라고 여겨온 모습들이 재능이랍시고 보고서에 기입된 것이었다. 내가 제일 답답하다고 여겼던 내 단점들이 굉장히 정돈된 단어와 문장으로 친절하게 쓰여, (쓸데없이) 순위까지 메게 져 있던 꼴이다. "잘 보렴 얘야, 너는 이래서 별로고, 저래서 별로야. 이제 잘 알겠니?" 보고서에는 그런 의도는 없었겠지만 내가 받아들이기엔 꼭 저런 느낌이었다.
강점도 재능도 아닌 내 최악의 단점 5가지. 보고서를 읽는 나의 마음은 난감 그 자체였다. 30분 전에 어설픈 한글로 번역된 문항보다 더 난감했다. "이게 왜 진짜?"를 남발하며, 지금 내가 마주한 이 모순된 진실과 이에 상응하는 감정은 모국어로도 번역할 수 없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리 없는 보고서의 정성스러움을 끝까지 읽자니 내 화도 점점 정성스럽게 쌓였다. "아, 나중에 읽던지..." 그냥 보고서를 덮었다. 컴퓨터를 당장 꺼버렸다. 그러나 덮는다고 끝날 것은 아니었다. 여타 그랬듯 나의 또 다른 단점인 곱씹기 스킬을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단점이 장점? 아 진짜 웃기네. (하나도 안 웃김)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 또다시 화가 쌓였다. 이내 곧 불안함도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뭐 해 먹고살지, 나 어떻게 살지, 할 줄 아는 것도 없이 나이만 먹고.... 그리곤 불현듯 잊고 지냈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소라 씨는 소라 씨를 너무 몰라요."
"소라 씨는 소라 씨한테 너무 관심이 없어요."
어느 날인가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이었다. 선생님은 주로 내 얘기를 곰곰이 듣다가 한두 마디씩 필요한 말만 해주는 편이었는데, 그 말만큼은 쉽게 인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니?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엥? 아니요? 선생님, 저는 저만 생각해요!”
“어디 가요?”
“아니, 저는 저한테만 관심이 있다고요.”
“그러니까 어느 부분이요?”
(마치 창과 방패)
그때만 해도 그 말이 하나도 공감이 되지 않아 선생님이 뭘 아세요!라는 억하심정에 몹시 괘씸하다는 말투로 맞받아쳤는데.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어떤 뜻인지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참나, 세상 예민은 다 끌어안고 사는 것처럼 굴더니 스스로에겐 이렇게 둔할 수가 있나. 세상에 자기 장점을 단점이라고 여기며 사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그래 나 진짜 나한테 관심 없(었)어. 맞아, 난 나를 하나도 몰라... 아니 모르는 게 아니라 나를 하나도 몰라줬어. 알아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거야. 근데 그 말에 화약 가루라도 탔나 코 끝이 찡해지더니 이내 곧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서른 넘어서 울 일이 왜 이렇게 많은지. 도대체 멋진 어른은 어딨냐(엉엉) 드라마에나 존재하냐(엉엉) 나는 왜 이렇게 맨날 찌질해(엉엉) 훌쩍 거리며 다시 컴퓨터를 켜고, 보고서를 클릭했다.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다시 소중하게 읽었다. "참 좋은 말들이네..." 갑자기 비실비실 웃음이 튀어나왔다.
몇십만의 데이터가 쌓인 훌륭한 검사지. 그게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사실이든 뭐든 간에 내 마음에 믿음이 없다면 완벽한 신뢰란 없겠지. 더욱이 재능을 발견했다 한들 내 마음에 믿음이 없다면 변화 또한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름 모를 머리 좋은 외국인 어르신... 의심 많은 저는 이 보고서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어요. (보고서에도 제가 끝까지 심사숙고하는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대신 저는 저를 신뢰하기로 결정했어요. 고맙습니다. 염병..
반대로 생각해 본다. 아예 다른 내가 결과로 나왔다면 기분 좋게 받아들였을까? 아니, 이게 어떻게 나냐며 어리둥절 화를 냈겠지. 너무나도 나인 나를 보면서 다시 비실비실 웃는다. 이제 절대 단점은 없어. 아니,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단점은 틀렸어. 너 쓸모 있어 소라야. 이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기까지 무려 32년이 걸렸다. 갑자기 속이 후련해진다.
물론 나는 여전히 내가 밉고, 부족하고, 좋아하기 힘든 부분이 너무나도 많지만, 이제는 나를 미워하는데 (쓸데없이)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싣기로 했다. 일단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 앞으로 내 재능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어느 곳에서 내 재능을 펼치며 살아야 할지는 또 평생의 과제겠지. 답이 계속 바뀔 수 있는, 글자 수가 제한이 없는 난해한 주관식 같은, 사실상 뾰족한 답이 없는, 하지만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언제든 정답일 수 있는 과제. 골치 아프지만 행복한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