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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pr 18. 2022

사과나무에 꽃이 핀다는 것은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십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 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는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이다     



 황지우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는 수직성이 강조된 시로, 이 시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과 그에 반해 막 위로 밀고 올라가는 기온, 싹, 푸른 잎, 꽃의 생명력이 절묘하게 대비된다. 게다가 시인은 마침표 하나로도 쉼표 하나로도 이야기를 하는 존재인데, 이 시에는 그런 시인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다음에 찍힌 쉼표는 '그러나'와 이어지며 시의 반전을 유도하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의 쉼표는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조용히 은밀하게 올라오는 새싹의 움직임을 연상시키며 시를 천천히 낭독하게 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의 쉼표는 드디어 봄을 맞아 꽃을 피우는 나무의 절정, 그에 대한 감탄, 어떤 희열과 성취감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집 사과나무에 꽃망울이 맺히고 꽃이 열렸다. 나는 식물의 개화를 볼 때면 황지우 시에 담긴 '수직성의 힘'을 느낀다. 땅으로부터 밀려 올라간 이 생명력. 이들이 하늘을 향해 위로 나아가는 것은 삶에 대한 강렬한 희구이며, 성취이자, 희망이다.


 그냥 봐도 아름다운 꽃이지만,

 내가 봄을, 꽃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우리집 사과나무에 꽃이 열렸다.
하나의 세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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