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Jun 16. 2023

운명의 수레바퀴

 내가 살고 있는 서종의 대표적인 문화행사라고 하면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진행했던 아름다운 장면을 꼽을 수 있겠다. 유유히 흐르는 푸른 강과 강 건너 겹겹의 산들 그리고 그 북한강 가장자리에 자리한 리버마켓은 초록 잔디 위에 수십 명의 셀러가 여유로운 미소와 전문적인 실력을 보여주며 각자 개성 있게 매대를 장식하고 있다. 돗자리를 깔고 가족과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 뛰어노는 아이들, 하늘을 날아다니는 연들, 그런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난주 양수리 로컬푸드에 가서 도자기 제품을 구경하다가 곱게 나이 드신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도자기를 만드신 분이었는데, 로컬푸드 위층 카페에 갔다가 그 어르신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꽃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라며 말을 걸어주셔서 카페에 전시된 도자기도 구경하며 도자기에 꽂힌 꽃(생화 장식)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다 오늘은 선생님 댁에 방문하는 인연으로까지 이어졌다.  


 마치 조선시대 도공의 열정을 보여주듯  흙을 골라내는 일부터 물레로 흙을 빚어내며 유약을 바르고 고온에 굽는 그 모든 일을 손수 해내시는 송 선생님과 손으로 흙을 조물조물 만져 도자기 인형을 만드시는 정 선생님. 이렇게 몇십 년을 함께 작업하며 같은 길을 걸어오신 노부부의 모습에서 사람들이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느림의 미학과 정성의 숭고함을 떠올렸다.  

   

자연과 잘 어울리는 정 선생님의 작품들

 

 정원의 빈 공간이 아쉬워 정 선생님의 작품을 몇 점 사서 집에 오자마자 꽂아 두었더니 마치 살아있는 꽃처럼 자연과 잘 어울린다. 그리고 여느 정원을 가봐도 발견하지 못했던, 한껏 들이마셔 속 가득 가둬두고픈 베르가못을 선생님 댁에서 발견한 나. 초면에 염치불고하고 몇 뿌리를 부탁했더니 한 손 가득 뽑아주셔서 바로 마당에 식재하였다.  


베르가못 꽃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렇다면 제목이 왜 '운명의 수레바뀌'이겠는가.


 물레 앞에 앉아계신 송 선생님을 뵙는 순간 '어, 뭐지? 이 익숙한 느낌은?' 이런 생각이 들며 뇌의 회로가 수 초만에 과거를 훑어내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딩동댕~~ 하며 떠오른 장면이 바로 아래의 사진이다.


수천 장 사진 속에서 찾아낸 과거의 리버마켓

 

 2016년 5월 21일, 봄의 리버마켓에서 나는 내 아이들과 함께 리버마켓 셀러였던 송 선생님께 도자기 체험을 받았던 것이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 수 있게 배려해 주셨던 송 선생님의 노력 덕분인지 아직도 작은아들의 머릿속에는 이때의 기억이 선명했다. 집으로 귀가하며 오늘의 만남을 이야기하던 중 작은아들은 나에게 새로운 조각을 던지며 기억의 퍼즐을 완성하게 해 주었다.

 

 "내가 만든 도자기에 엄마가 꽃 꽂겠다고 물 부었다가 도자기 녹아내렸잖아!"라고 말이다.

 

 그렇다, 이렇게 만들었던 도자기는 이 무지한 엄마의 욕망 때문에 물에 녹아내려 사라졌다는 사실. (고온에 구우며 강인해지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그러나 이 아름다운 체험과 기억은 여전히 이렇게 살아있을 뿐더러 오늘 이루어진 두 장인과의 만남을 더욱 각별하게 만들어 주었으니, 다시 생각해 봐도 기막힌 인연이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나를 어디로 데려가 줄까.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는 말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대박의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