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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냐냐 Apr 28. 2019

아파아악!!!

제왕절개 첫날 그리고 이튿날 새벽까지




출산 전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마블 영화를 좋아하지만 티켓팅엔 소질이 없는 부부는 결국 용산 아이맥스를 놓치고 차선책으로 천호를 선택했다. 그러나 차선책으로 만족할 리 없는 남편이. 남는 시간마다 예매 페이지를 새로고침 하더니 결국! 25일 새벽 용산 아이맥스 취소표를 낚아챘다. 그것도 제일 뒷자리 

다응이는 역아였고 성격이 날 닮아 태평~한 겐지 남편이를 닮아 고집! 스러운 겐지 돌 생각을 않았다. 엔드 게임만 보면 된다며 지지난주에 27일 오전으로 제왕절개를 잡아놓은 부부는 예매 성공!! 소원 성취!! 라며 둘이서 하이파이브에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까지 추면서 좋아했더랬다




그러나...


22일 오전 10시 마지막 정기검진

싱글싱글 웃으며 진료실로 들어간 우리를 맞은 건 태동 검사 그래프와 담당 선생님의 찡그린 미간.

"자궁 수축이 거의 7분 간격으로 있네요? 길어봤자 내일인데? 거의 오늘 못 넘기겠는데?" 

얼마 전부터 자궁 즈음을 간헐적으로 파고들던 찌릿찌릿한 통증이 있었다. 검진 전날엔 급작스럽게 컨디션이 뚝 떨어져 하루 종일 숨을 헐떡이던 차였다. 걱정돼서 얼굴이 굳어진 남편이에게

"이러다가 내일 남편 안녕~ 용아맥도 안녕~ 하고 입원당하는 거 아냐?" 

농담을 건네던 나. 결혼 6개월 차 레벨 0 엄마 아빠였던 우리. 그저 엔드 게임만 생각했지 그 통증이 다응이가 똑똑~ 나 나갈래요~ 노크하는 신호라곤 생각도 못한 거다.




수술


자연분만이건 제왕절개 건 안 아프고 뱃속에서 아이를 꺼낼 방법은 없겠더라. 담담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로 수술실에 들어서니 무섭다. 역시 많이 무섭다. 하반신 마취를 먼저 했는데 처음 찌를 때만 찌릿할 뿐 아프진 않았지만 온 혈관과 신경을 타고 자글자글한 모래가 굴러다니는 듯한 느낌이 버겁다

칼로 몸을 베는 게 느껴질까 봐 너무 무서웠는데 다행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곧 몸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제왕절개라고 아이를 절개한 사이로 쑥 빼내는 게 아니었다. 

"여기를 좀 눌러주세요" "잡아 주셔야 돼요!" 

끙끙 소리까지 내는 스텝들과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 공포스러웠다. 초록색 천으로 가려진 내 몸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너무 무서워서 눈도 못 뜨고 주먹만 꼭 쥐었다. 그러다가

"이제 머리만 나오면 돼요"

흔들림이 멈췄다. 조용한 가운데 척척척 누군가 내 왼쪽으로 걸어가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아기 울음소리가 터졌다. 울음소리가 나는 쪽으로 "어어?" 하며 고개를 돌렸지만 초록색 천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엄마 잠깐 기다리시면 아이 깨끗하게 씻겨서 보여드릴게요"

그러더니 내 오른쪽으로 조막만 한 애기 머리가 쏙 들어온다. 너무 얼떨떨해서 잘 보지도 못했다. 그러곤 수면마취로 언제인지도 모르게 잠에 빠졌고 눈 떠보니 남편이가 옆에 있었다.




수술 직후


저녁 7시 즈음 병실로 옮겨졌다. 다리는 뭐 전혀 못 쓰겠다. 냉탕과 온탕을 쉬지 않고 백번 즈음 번갈아 들어갔다 나오면 이런 느낌이려나. 손가락을 까닥거려서 허벅지인듯한 부분을 긁어봤지만 내 몸이란 느낌이 전혀 없다. 배가 아프다. 마취 풀리기까지 4~5시간 걸린댔는데 꽤 많이 아프다. 옆에 앉은 남편이는 얼굴이 노래졌다. 아이를 보여주고 3~40분이 넘도록 수술이 끝났다는 말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수술실에서 나오지도 않으니 불안해서 내내 복도 끝에서 끝까지 걸어 다니고 있었단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까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배가 아팠고, 다리의 느낌을 참기가 힘들었고, 수술 중에 잔뜩 긴장해서 힘이 있는 대로 들어갔는지 어깨가 너무 아팠고 꼼짝도 못 하고 누워만 있으려니 온 몸이 저리고 결려서 잠들 수가 없었다. 남편도 진이 빠져 죽겠는데 보호자 침대가 너무 형편없는 데다 수술 후 8시간 새벽 3시부터 물 먹이겠다고 기다리고 괜찮은지 확인하느라 둘이 거의 한숨도 못 잤다




수술 다음날


과호흡과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아주 간혹 자궁수축제가 안 맞는 사람이 있다던데 그게 나였다. 이미 충분히 힘든데 쇼크라니 죽을 맛이다. 그래도 배의 통증이 생각보다 견딜만해서 안 죽었다. 죽을 만큼 아파서 덜덜 떠는 정도를 생각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 평소와 비슷하게 얘기하고 방실방실 웃을 수도 있길래 그렇게 했다. 그치만 남편이 얼굴은 회색이 됐다. 대표라 휴가도 못 내는데 오늘부턴 집에서 자게 해야지 내 남자 고장 나겠다.

4시 30분쯤 소변줄을 뺐다. 몸 여기저기에 주렁주렁 달린 게 너무 많다. 뭐라도 하나 빼내니 살 것 같은데 문제는 지금부터 4시간 안에 물을 최대한 많이 마시고 소변을 봐야 한단다. 일어나서 걸으란 얘긴데 대체 어떻게?

일단 공복 35시간 만에 묽은 미음을 입에 넣었다. 배에 전혀 힘을 줄 수 없으니 앉아서 죽 떠먹는 것도 힘들다. 뚝뚝 몇 방울 옷 위에 흘리고 나니 괜히 내가 한심해지는데 그러기 싫어서 농담이나 했다.

"자기야 나 턱받이가 필요한 것 같아요" 

"오구 다응이 턱받이라도 꺼내 줄까요?"

남편이가 웃으면서 옆에 있던 수건으로 턱받이를 해줬다. 같이 끽끽 웃다가 배 아파 죽을 뻔했다. 그래도 이틀 만에 처음으로 웃었다. 웃는 얼굴 보여주기 말고 진짜 웃는 거. 그리곤

"어떻게 으악 잠깐만 잠깐만 아악 잠깐만 이거 안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되지 있어봐 잠깐만 내가 할게 으으 허억 너무 아프다 아악"  

대충 이런 과정으로 침대에서 일어난 다음 네다섯 걸음을 걸어 소변을 보고 침대로 돌아왔다. 등받이 없이 허리를 일으켜 세우는게 진짜 너무너무 너무너무너무 아팠다. 그 뒤로 남편이랑 엄마 부축을 받으면서 걸을 때는 그냥 죽을 것 같았어서 기억 안난다. 침대에 다시 누워서 숨을 좀 가다 듬으니 7시 30분. 오늘 마지막 신생아 면회 시간이다. 도저히 다시 일어날 자신이 없어서 다녀오라고 손 흔들고 누워있는데 간호사님들이 와서 얼른 일어나서 애기 보러 가라고들 성화다. 빨리 나으려면 지금부터 무조건 움직여야 한단다. 가라니까 어떻게 가긴 갔다. 그런데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다리가 덜덜덜 떨린다. 주저앉지 않으려고 기를 쓰느라 애기 얼굴도 눈에 안 들어왔다. 신생아실 유리벽에 머리를 기대고 남편과 엄마가 하는 얘기에 겨우겨우 맞장구치면서 버티다가 병실로 돌아왔다. 다시 눕는 것도 아프고 누워 있기도 아프다. 이게 언제 안아플지 슬슬 마음이 약해진다. 엄마가 가고, 남편이는 진짜 집에 가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남편이는 중증 디스크 환자다. 형편없는 보호자 침대 때문에 오늘 종일 말도 못하게 아팠을 꺼다. 빨리 집에 보내서 제대로 허리 피고 쉬게 하고 싶은데 도저히 혼자 있을 자신이 없다. 아까 미음 먹고 상처 소독한다고 수술 부위에 붙여놓은 거즈랑 밴드를 다 떼어냈는데 옆에 있던 남편 이랑 엄마 얼굴이 싸악 굳어지더니 말이 없더라. '꽤나 보기 흉한가 보네 이게 수술이지 색종이 놀이겠어' 생각하고 둘이 걱정 덜어주려고 더 괜찮은 척하고 있었더니 이제 나도 한계다 

"너무 아프다"

결국 울음이 터졌다.

나는 긍정적이거나 남 걱정시키기 싫어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냥 너무너무 감정적이기 때문에 적어도 감정을 합리적으로 쓰고 싶어 할 뿐. 배를 근육까지 몇 겹을 갖다가 칼로 끊어놨는데 안 아프고 배길 방법이 어딨어 울어서 나으면 눈알 빠지게 울겠는데 그게 아니니까 좋게 좋게 기분 좋게 다들 걱정 안 하게 방실거리는게 훨씬 낫지.... 그런데 남편이 없이 혼자 있을 생각 하니 마냥 서럽고 무섭다

눈물 뚝뚝 흘리고 있었더니 남편이는 말없이 나가서 간호사를 데리고 왔다. 이것저것 대답하고 진통제를 맞고 쿨쩍 거리면서 누워있었다. 바보 같다. 이 나이 먹어서 무섭다고 울어야 되고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고 혼자 화장실도 못 가고 아 짜증 나 이번엔 반대로 화가 치솟는다. 

"화장실 갈껀데 혼자 갈꺼야 보고만 있어봐"

그리곤 진짜 속으로 욕 백번 하면서 팔로 상체를 들어 올려 한번에 앉았다. 아파서 숨이 턱 막히는데 지금은 짜증 나서 죽어버릴 것 같지 아파서 죽을 것 같진 않다. 씩씩 거리면서 화장실 다녀 와선 침대에 걸터 앉았다. 혼자할 수 있겠다고 남편을 보내고 컴퓨터를 열었다. 내 인생에, 우리 인생에 둘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을 제대로 기록 해놓자 싶었다. 시간이 좀 지나면 그때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겠고 더 많이 지나면 엄마가 이렇게 너 낳았어 하는 얘기도 할 수 있겠지. 일단 내일은 좀 덜 아팠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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