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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히 Apr 02. 2023

리뷰/등대를 둘러싼 낭만의 재 정의

책<세상 끝 등대>를 추천하며


바다 위 낭만적인 보호자 ‘세상 끝 등대’. 책의 제목이 등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등대에 대한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야기가 가득할 줄 알았는데 웬걸 없어져가는 등대의 현실, 등대에 얽힌 이야기, 등대지기들의 즐겁고도 쓸쓸한 일상이 담담하게 풀어져 있었다. 낭만이 곧 아름다움이라고 여겼던 내게는 다른 전개로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다 읽어갈 때쯤 낭만이 새롭게 정의되었다. 그 자리를 지키며 본인의 맡은 바를 해내는 것,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어두운 이야기들이 가득 담긴 등대의 역사, 그럼에도 끝이 보이는 유한한 등대의 일생.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인생 같았고 우리가 인생을 낭만적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등대의 일생도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굴곡이 있기에 아름다운, 나는 낭만을 더욱 확장된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낭만적인 이야기들은 총 34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34개의 등대가 소개된다. 책의 한쪽엔 삽화, 한쪽엔 등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등대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고 느끼면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등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다면, 맨 앞쪽의 등대 지도를 참고하면 된다. 등대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의 역사에 따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어 각각의 특색이 잘 드러난다.


등대의 삽화를 보며 등대에 담긴 이야기들을 상상해본다. 혼자 우뚝 땅이 끝나는 지점에 서있는 등대는 견고하고 단단해 보이기도, 외롭고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그 곳에서 일어난 모든 이야기들을 조용히 간직하고 있는 등대의 존재가 위대하게 느껴진다. 주어진 이야기와 삽화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곁들이다 보면 한 챕터를 읽는데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 책은 따뜻하고 섬세한 삽화와 짤막한 이야기들이 간결하게 함축되어 있어, 짧은 호흡의 ‘등대 사전’ 같기도 하다. 그림과 글의 정확한 분배, 잘 정돈된 구성이 이 책의 소장가치를 더욱 높인다. 책의 미적 구성이 그 가치를 더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언젠가는 이 책 한권을 들고 곳곳의 등대들을 보러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육지에서 살때에 비해 내 몸이 더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섬 생활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은 매번 외로움과 권태를 어떻게 견디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하지만 감각을 깨어 있게 만들다 보면 온몸에 힘이 솟구친다.” -p.96. [21. 마치커 등대]


이 등대가 위치한 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거친 땅이다. 일주일에 5일 비가 내려 유리창도 쉽게 부셔지고, 전기 공급을 끊기게 하는 악명 높은 곳이다. 사람들은 등대지기 존 쿡에게 어떻게 그곳에 살 수 있냐 묻고, 모두가 그 곳에서 근무하기 꺼려하지만 존 쿡은 마치커를 사랑하고, 이 등대에서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


존 쿡은 위기에 처한 배를 구하고, 긴급 시 소통을 돕고자 비둘기에 쪽지를 보내고, 등대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20분에 한 번씩 펌프질을 하는 것에 불평을 하지 않았다. 노년에는 등대에 대한 회고록을 남겼고, 마치커섬에서 잠들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다. 그는 진실로 마치커섬과 마치커 등대를 사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등대지기들에게 어떻게 이곳에서 살 수 있냐고 묻는 것에 대한 대답은, 그들이 정말로 등대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등대지기 일을 하며 느껴지는 모든 감각들을 소화할 수 있는 자만이 등대지기를 하는 것 같기에 더욱 그들이 멋지게 보인다. 이들이 등대에 쏟은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등대의 존재가 더욱 유일무이하고 위대하게 느껴진다.



“1961년 6월 18일 밤, 4천 리터의 휘발유와 프로판가스가 폭발을 일으키면서 등대의 창고가 대파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때 위층에서 자고 있던 윌터 스코비는 그 충격으로 침대에서 튕겨 나갔다.” -p.128 [29. 스태너드록 등대]


가만히 있다가도 사고가 날 수 있는 등대. 갑작스런 사고로 등대지기들이 즉사했다. 이 사건 이후로 스태너드록에서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고, 이 등대는 더욱 황량하고 쓸쓸하게 변해갔다고 한다. 


이 밖에도 등대를 둘러싼 잔혹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많이 소개된다. 구조를 받지 못해 시신과 동침해야했던 이야기, 미끄러운 바위섬에 미끄러져 파도에 휩쓸려 시신조차 찾지 못했던 이야기, 불가사의한 마약, 사망 사건과 연루된 이야기 등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등대는 저 넓은 바다를 끼고 있는 동화 속 아름다운 존재가 아님을 확실하게 체감했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 인적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을 보니 오히려 무섭고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등대의 이면을 알게 되어 조금은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이 또한 등대가 품고 있는 이야기니 오히려 등대와 가까워지고 잘 알게 된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책을 덮고 등대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등대가 가진 다양한 모습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저 아름답기도 무섭기도 한 등대들을 되돌아보았다. 다각적인 모습과 풍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점차 사라져가 역사에 남게 될 등대지기와 등대의 존재가 애틋하다. 함께 했던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빛을 건네 수많은 이들을 구했고, 한 사람의 업이 되어 인생의 큰 부분이 되어주기도 했으며, 무수한 비밀들을 기꺼이 묵묵하게 품어주기도 했다.


한걸음 물러서서 등대에 얽힌 이야기들을 쓱 되돌아보니 앞서 말한 것처럼 낭만적이다.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어 마치 우리의 인생과 닮은 부분이 많기에, 이 역할을 다한 등대들에 자꾸만 관심이 가져지는 것이 아닐까. 등대가 품은 낭만에 함께 젖어들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더 많은 이야기는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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