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을 읽고
좋은 예술을 판단하는 단 하나 변치 않는 기준은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고유한 시각이다.
에드워드 호퍼
작품을 감상할 때 초점을 두는 부분은 각기 다르다. 표현 기법, 스토리, 구도, 색감 등 작품의 특징에 따라 보는 방식이 달라진다. 이전부터 나는 애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볼 때 마다 구도와 인물에 눈길이 가곤 했다. 무미건조한 듯한 인물의 몸짓과 표정, 그리고 이러한 인물을 덤덤하게 바라보는 것 같은 구도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작품 속 상황과 이야기를 상상해보며 감상했다.
그런 나의 상상에 힘을 더해줄 책을 만났다. 바로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이다. 저자는 호퍼의 그림을 볼 때 느끼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에 집중해 이를 풀어내고자 했다. 감정이 배제된 것 같기도,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응축된 깊은 감정이 담겨있는 것 같기도 한 호퍼의 작품을 함께 읽어주었다.
책은 총 15개의 목록으로 구성되어있다. <도시>, <고독>, <여행>, <정거장>, <시선> 등이 그 목록 중 일부이다. 이 목록들을 쭉 읽기만 해도 호퍼의 작품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호퍼의 그림을 모르는 이들도 분위기를 짐작해볼 수 있는 단어들이다. 본격적으로 책에 들어가기 전, 이 목록들을 찬찬히 살펴본다면 더욱 몰입하여 호퍼의 작품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책의 목록 <정거장>에 실린 《주유소(1940)》이다. 이 작품을 보고 느꼈던 감정은 그저 어두운 밤 속 홀로 있는 주유소 직원 그리고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쓸쓸함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밝음을 만나려면 어둠을 지나야 한다’로 해석했다. 밝은 주유소와 대비되는 뒤편의 어두운 숲. 그리고 그 숲을 지나쳐야 하는데 그 직전에 맞이한 마지막 밝은 도심의 밝은 주유소를 대비시켜 해석했다.
대비 때문에 어둠이 더욱 깊어 보인다. 감상자들은 뒤편의 어둠에 절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호퍼가 이끄는 대로 시선이 움직이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읽어낼 수 있게끔 잘 짜여진 작품을 감상하는 것 같았다. 어두운 숲을 지나치면 또 다시 밝은 무언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삶의 순리를 덤덤하게 말하는 것 같다.
<분위기>파트에 실린 《푸른저녁(1914)》이다. 배경은 카페로 보인다. 카페에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앉아있다. 바로 광대다. 카페에 앉아있는 광대를 마주한다면 아마 그림 속 카페 손님들처럼 우리는 신기한 눈빛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광대로 눈길이 쏠리며 점차적으로 광대의 감정이 이입하게 된다. 타인을 즐겁게 하는 직업이지만 담배를 문채 고독함을 풍기고 있다.
왜 고독할까. 호퍼는 이 광대에 본인을 투영했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야수주의와 입체주의가 대세였다고 한다. 하지만 호퍼는 19세기 예술가들의 화풍을 추구하며 당시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화풍을 지키던 고독하고 황량한 마음을 카페 속 광대에 표현한 것이다. 푸른색 배경이 흰색 옷과 대비되어 더욱 눈에 띄며 창백한 분위기를 더한다.
이 작품은 《두 희극배우(1965)》로 <마지막 인사>파트에 들어가 있다. 이 작품은 호퍼가 예술가로서의 삶을 끝내는 시점에 그린 그림으로 추측된다. 두 남녀가 손을 맞잡고 흰옷을 입고 정갈하게 서있다. 뒤편의 검은 배경이 이 두 인물에게 시선을 쏠리게 만든다. 이는 호퍼와 그의 아내이자 든든한 조력자인 조지핀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호퍼는 예술가를 하나의 희극배우로 여겼을 것 같다. 무대에서 연극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배우와 예술 작품으로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예술가가 결이 비슷하기도 하다. 차분하고도 정갈하게 마지막을 말하는 것 같다. 미련도 아쉬움도 남기지 않고 예술가의 길을 마무리하는 초연한 느낌이 든다. 마지막을 이토록 명확하게 표현한 작가가 얼마나 있을까. 그간 표현한 호퍼의 작품들처럼 담담하고 절제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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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호퍼의 작품들 보다는 새롭게 발견하고 느낀 작품들을 위주로 기록을 남겨보았다. 도시민들의 헛헛함과 황량함 그리고 알 수 없는 고독감에 동감되기도 했지만, 호퍼가 예술가로서 살아온 길을 함께 걸어본 느낌도 든다. 작가가 아무리 자신을 배제하고 작품을 그렸을지라도 색채, 구도, 분위기 등에서 아주 작게나마 작가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호퍼의 작품은 무수한 이야기와 감정들을 여러번 압축해 최대한 담담하게 표현한 것 같다. 그 담담하고 딱딱해보이는 표면을 깨고 파헤친 자 만이 깊고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그 맛을 느낄 수 있게끔 도와준 이 책에 감사함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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