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더 기묘한 미술관> 을 추천하며
작가와 예술작품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을 때 나는 작품과 단둘이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은 묘한 재미를 느낀다. 서로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느낌이랄까, 그 느낌이 좋아서 미술관에 갔을 땐 꼭 전시 팸플릿을 챙겨보곤 한다.
같은 선상으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아 다양한 예술 책을 읽어보곤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예술 책 한권을 골라 들었다. <더 기묘한 미술관>이 바로 그 책이다. “하나의 그림이 열어주는 미스터리의 문” 이라는 강렬한 소개 문구는 왠지 더 내밀한 이야기를 전해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기대를 충족시키듯 <더 기묘한 미술관>은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책은 마치 내가 큰 대형 미술관을 걸어 다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책이 총 다섯 개의 관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1관은 ‘운명의 방’, 2관은 ‘어둠의 방’, 3관은 ‘매혹의 방’, 4관은 ‘선택의 방’, 5관은 ‘기억의 방’이다. 챕터마다 스토리가 구분되기에 미술관의 관들을 돌아다니는 느낌이 든다.
나는 1관 운명의 방을 거닐며 존 싱어 사전트라는 작가를 만났다. 똑같은 여인의 초상화인데 한 그림은 여인의 어깨끈이 내려와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어깨끈이 올라와 있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사전트는 어깨끈이 내려와 있는 <마담 X의 초상화>를 1884년 파리 살롱전에 출품했는데 큰 혹평을 들었다. 굉장히 외설적이고, 포르노그래피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1865년 파리 살롱전에 발표된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모두 알 것이다. 이 작품은 더욱 노골적인 누드화였는데, 어째서인지 어깨끈만으로 사전트는 혹평을 듣게 되었을까. 이유는 작품 속 고트로 부인이 사교계에서 이미 얼굴이 알려진 결혼한 여성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보수적인 파리의 사교계는 결혼한 여성의 약간의 노출도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냥 두 작품을 봤을 땐, 작가의 심경 변화로 옷의 형태에 변화를 준걸까? 싶었지만 이런 내막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니 더 흥미롭고 재미있다. 작가의 마음고생에 감정이입도 해보고, 작품 속 여인을 다시 한 번 바라보기도, 당시의 사회 분위기도 읽어보았다. 스쳐지나가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작품일 것 같다. 다방면에서 바라보고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그리고 5관 기억의 방에서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를 만났다. 이전 학부시절 서양미술사를 배웠을 때 이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에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작품 속 오렌지, 강아지, 거울, 신발에 대한 여러 이야기, 이들이 부부다 부부가 아니다에 대한 논쟁, 얀 반 에이크가 여기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몰입도를 높였다. 여러 가설들을 충분히 학습했음에도 매번 흥미롭다. 그림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기묘함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2003년에 발표된 새로운 가설인 남편이 죽은 부인을 기리고자 그림을 주문한 것이라는 것도 너무나 재미있다. 말 없는 작품에 긴 추리소설이 담긴 느낌이다. 여전히 여러 이야기를 읽고 추론하는 것이 참 재밌는 작품이다.
이렇게 술술 작품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책은 금세 끝을 향해 달려갔다. 내가 추린 두 가지 이야기 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다. 하나의 작품을 두고 연관된 이야기를 들으니 작품을 더 깊게 알게 된 느낌, 더 친밀해진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알게 된 작품들은 쉽게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단순한 사실 나열로 작품이 잘 읽히지 않는다면, <더 기묘한 미술관>을 추천한다. 편안한 문체로 작품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