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을 예방하는 우리의 자세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지치는 일 중 하나가 '사람 간 관계'이다. 이별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많은 관계들이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든다. 하지만 수많은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쉽게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갑질'이 아닐까?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대학교에서, 연구실에서, 회사에서, 심지어 연인 간의 관계에서 갑을을 따지고 부당함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갑과 을로 나뉜 우리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원만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 이를 위해 갑질의 조건과 환경을 분석하여 보다 나은 하루를 계획해보려 한다.
여기 한 사무실이 있다. 중앙에서 고개를 떨군 을과 소리를 지르는 갑이 보인다. 진정한 갑질이란 구석에서 이뤄지지 않는 법. 서류와 물건이 허공 위로 날라다니고, 부모님께서 특별 출현한다. 갑은 을에게 동물로써의 정체성을 강요한다. 너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고. 어떻게든 다른 생각을 하고 한 귀로 흘려들어도 끝나지 않는 상사의 목소리. 정당한 피드백이라면 화가 나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정당한 지적 같아도 갈수록 개인적인 감정이 섞인 피드백일 뿐이다. 대체 저 인간은 왜 저렇게 사나? 하루라도 난리를 치지 않으면 목에 가시라도 돋는 걸까?
이런 을들을 위해 갑질이 발생하는 조건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갑질의 특징은 무엇인가? 필자가 찾은 특징은 '폐쇄성' 그리고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폐쇄성이란, 갑질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폐쇄된 것을 의미한다. 갑질의 대상은 보통 집단에서 고립된 경우가 많다. 주변에 동료가 있더라도 그들은 보통 그림자-혹은 공기와 같다. 나 혼자 감당해야만 할 것 같고 주변이 막힌 듯한 느낌. 그것은 갑질이 관계의 폐쇄성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란, 갑질을 당하는 순간의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갑질의 인과관계는 갑질을 해결할 수 있는 권력자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즉, 의사결정자는 갑의 정보만을 취사선택한다. 어떤 갈등이든 '동기'와 '이유'가 있지만, 을이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졌는지는 중요치 않다. 벽을 보고 대화하는 것처럼 내 상황은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폐쇄성과 정보의 비대칭성은 쉽게 갑질하게 만드는 '조건'이기에, 이 조건을 건드리면 갑질을 감소시킬 수 있다. 실제 최근 출범한 '대학원생 119'는 대학원의 내 폐쇄성과 비대칭성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학원생 119가 대학원 내 갑질을 감소시킬 것으로 기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보공개만으로 갑질이 완벽히 해결되기는 어렵다. 갑질은 본질적으로 '권력' 관계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권력을 가진 '갑'이 권력이 없는 '을'을 대하는 것이므로, 정보공개를 무시할만한 권력이 있는 사람은 여전히 갑질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갑질이란, 본질적으로 '권력'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파악해야 하는 관계이다.
일반적으로 권력은 "자원 제공이나 처벌을 통해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권력은 개인이 주변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따라서 권력에 대한 느낌이 다른 사람은 행동에서도 그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 권력을 가진 사람(고권력)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느끼고, 좀 더 자극 추구적인 행동을 하며, 먼저 행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권력이 낮은 사람들(저권력)은 먼저 위협과 처벌에 먼저 반응하여 방어적인 행동을 주로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권력의 핵심적인 속성은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차별화'되고 분리되었다고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안다면 갑질을 하는 사람들이 왜 자신들이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일상에서 관찰되는 아래 갑질 유형들에게서도 자신을 차별화하는 특징을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1. 답정너형 : 결론과 방법은 이미 정해져있고,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해내야 한다고 명령하는 유형
2. 비꼼형: 의견을 경청하는 듯하나 실제로는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는 유형. 이후 오며가며 한 마디 툭툭 비꼬는 것이 특징
3. 회피형: 모든 의견을 경청하지만 결정과 책임을 지지 않는 유형. 혼자 일하는지 둘이 일하는지 알 수 없지만 공은 나누고 과는 혼자 짊어진다.
위 유형의 공통점은 타인의 피드백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내 지시에 토를 다는 '을'에게 불만을 공격적으로 드러내는지(비꼼형, 답정너형), 뒤로 숨기는지(회피형)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우면 불편하고 상대에 맞게 이를 조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지만, 갑들은 '감히'라는 감정이 끼어들다보니 균형을 추구하기보단 나를 앞세우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 실제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심각한 갑질을 저지르는 사람들(어딘가의 임원, 재벌가, 교수 등)은 24시간을 상대와 의견을 조율하기보단 '차별화된 나'로서 사는 것으로 채우는 경우가 많다. 하루하루를 대접받는 것으로 살면 곧 균형감각을 잃게 되고,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따라서 갑질을 예방하기 위해선 남들과의 균형 감각을 중시해야 하고, 나아가 자신을 '차별화'되었다고 느끼게 하는 순간을 의도적으로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주변 환경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한데, 자신을 떠받드는 상황만으로 하루를 구성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스스로 '갑질'하기 쉬운 직책과 위치에 있다면 의도적이라도 수평적 관계를 맺는 환경을 찾아 주의를 환기하는 것이다. 새로운 취미를 만든다던가, 가족과의 시간을 늘린다던가 하는 식으로. 하루하루를 다양한 관계로 채움으로써 갑질에서 한 발짝 멀어져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