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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장 Nov 13. 2023

그 첫겨울의 날

집을 짓기 위한 첫걸음, 지적공사에서 표시한 경계점을 확인했다


아이를 긴급 보육으로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내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아이는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가야 했기에 잠깐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우리는 올해(2020년) 우리 가족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바로 집을 짓는 일이 그것이다.


땅을 사고, 등기를 하고, 세금을 내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곁가지로 봐오던 일들을 직접 경험하다 보니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직접 등기를 하고 인허가를 진행하면서 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건축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입장인데도 이러한데 건축을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짜증이 나고 답답할까.


지적 측량을 하는 날이 정해지고 이웃과 얼마나 싸우게 될까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아내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제발 이미 시공된 옹벽이 우리 땅 안에 들어와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전날 아침 일찍 앞집과 뒷집에 작은 메모와 선물을 남기고 측량이 있으니 같이 확인해 주십사 얘기했다. 다행히 추워진 날씨에도 밝은 얼굴로 나오셔서 인사를 나눴다. 아파트로 이사할 때는 윗집 아랫집이 향후 주거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단독주택은 인접한 집들이 그만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나 마당 활동이 많아지면 옆집의 소음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자칫 미안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오래된 아파트의 층간 소음에 비할 바 아니겠으나 그걸 피해 주택으로 도망친 분들은 또 다른 소음에 괴로워하는 분들도 더러 있다고 했다.


우리 앞집과 뒷집분들은 너무나 좋으신 분들이었다. 교양 있는 서울 사람이 쓰는 말이 표준어라면, 전형적인 표준어를 구사할 수 있는 분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땅에 얽힌 얘기를 들었다. 원래 우리 땅은 앞집 선생님이 사서 반을 나눠 파신 거라고 했다. 그래서 3년 전 보강토 옹벽을 할 적에 같이 했고, 그때 이미 지적측량을 했기 때문에 땅의 경계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본인은 옹벽 아랫집의 열렬한 민원에 제 땅을 다 찾지 못했다는 것과 측량을 한 후에는 필히 담장이라도 하라는 말과 함께.


“선생님은 경계에 담장이라도 하셨어요?”

“나는 못했어요. 하도 민원이 심해서. 그러니까 이번에 하라는 거예요. 지금 아랫집 주인들은 전세라 크게 개의치는 않을 거예요.”


우리나라에 있는 이상한 법 중에 하나가, 개인 소유의 땅이라 하더라도(지상권이 토지주에게 있음에도) 몰래 건물을 지어 20년이 넘으면 건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 땅에 경계를 분명히 해두고 경고문구까지 붙여놔야 후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색 고어텍스를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지적공사에서 나온 것이다. 경계 원점이 잘 잡히지 않는지 언덕 위아래로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더니 이윽고 우리 땅에 도착했다.


“경계점이 옹벽 아래에 있는데, 저기 아래는 못하겠는데요?”

“아랫집 통해서 들어가시면 돼요.”

“아, 네.”


도로와 붙은 경계점은 금방 찍었는데 옹벽 아래에 있는 점은 다시 기준점을 잡아야 해서 시간이 배로 걸렸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경계점을 다 찍었다. 땅이 얼어서 말뚝이 잘 박히지 않았지만 가장 걱정했던 옹벽은 지적 경계 안으로 잘 들어가 있었다. 이제 드디어 경계가 확실해졌다.


측량성과부를 들고 올라오니 아내는 집에서 피운 불을 쬐고 있었다. 레몬차를 내어준 분, 불을 내어준 분이 이웃이라니, 이보다 더 좋은 이웃이 있을까.


이제 정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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