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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영 Jun 12. 2019

할머니와 더위사냥


최덕례 할머니가 집에 오신 뒤로 우리 집 냉장고에는 항상 더위사냥이 있었다. 더위사냥은 할머니의 ‘최애’ 간식이었다. 엄마의 엄마이자 돌 무렵의 나를 일 년간 돌봐주신 최덕례 할머니는 우리 가족이 부천으로 이사한 후부터 공식적으로 한 식구가 됐다.


할머니가 오신 지 한 달 즈음 지난 어느 날, 냉장고에 넣어둔 더위사냥 여덟 개가 하루 만에 모두 사라졌다. 엄마는 곧장 할머니에게 더위사냥 여덟 개의 행방을 추궁했다. 할머니는 “그 차가운 얼음과자를 어떻게 여덟 개씩이냐 먹냐”라고 “배 아파서 안 먹는다”며 극구 부인했지만, 그날 밤 할머니의 배에서는 본인 목소리보다 크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냉장고에 더위사냥을 하루에 두 개씩만 넣어놨다. 할머니는 더위사냥 두 개를 반으로 쪼개 총 네 번에 걸쳐 드셨다. 십분 전에 했던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여든여덟의 할머니에게는 더위사냥 여덟 개나 두 개나 매한가지였다.


더위사냥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탓일까. 할머니는 더위사냥 껍데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법이 없었다. 소파 틈새에서, 베개 밑에서, 조끼 주머니에서, 동전 지갑 속에서 깨끗하게 말린 더위사냥 껍데기가 부적처럼 나왔다.


더위사냥 부적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더위사냥 신이 우리 집을 지켜주고 있군’하며 배를 움켜쥐고 웃었고 엄마는 더위사냥 껍데기를 보이며 “이걸 왜 여기다 뒀냐”라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그게 왜 거기서 나와?’라는 표정으로 “몰라?”하며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최덕례 할머니는 오늘도 더위사냥을 먹었을까. 가슴이 두근거려서 커피는 못 먹지만, 커피로 만든 얼음과자인 더위사냥은 하루에 여덟 개를 먹기도 하는 이상한 취향은 여전할까. 네 토막 이상 드신 건 아니겠지. 냉장고에는 하루에 최대 두 개만 있어야 하는데…. 아, 거기에서는 더위사냥을 수십 개 먹어도 배가 안 아프려나? 그렇담 원 없이 드셔도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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