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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영 Aug 15. 2019

오늘도 쓴다

내가 쓰는 이유


어쩌다 글을 쓰게 된 걸까. <채널예스> 인터뷰 원고를 메일로 보내고 다시 용인에 있는 D기업의 인사담당자를 인터뷰하러 가는 길.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내가 글쓰기로 밥 먹고 살 줄이야...!


출판사 인턴을 시작으로 편집 기획사를 거쳐 기업 홍보팀에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지만, 과거에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 흔한 글쓰기 대회 입상 경험도 없고 글 쓰는 사람들의 출발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국어 선생님께 칭찬들은 기억’조차 없다. 일기도 겨우 쓰던 열세 살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가서 "너는 훗날 글 쓰는 일을 하며 먹고살 거야"라고 말한다면 아마 과거의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뭐래........."


이런 내가 왜 매일 출근해서 회사가 원하는 글을 써서 돈을 벌고, 퇴근해서는 돈도 안 되는 글을 자발적으로 쓰며 살고 있는 건가.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건 어려서부터 나는 책을 제외한 각종 편집물 읽기를 좋아했다는 것.


교회 주보를 열심히 챙겨 읽었고, 아이템플이 오면 문제보다 뒷면에 있는 퀴즈나 이야기를 먼저 읽었으며 은행에 비치된 각종 매거진을 비롯하여 선거철에 뿌려지는 후보자들의 홍보책자까지 이른바 '잡지류'는 꼭 한 번 들춰봤다. 이런 습성은 대학에 가서도 계속됐는데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대학내일> 챙기기. 이번 주 표지 모델은 누구인지 에세이면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지 요즘 대학가의 이슈는 무엇인지 늘 궁금했다.


글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잡지는 만들어 보고 싶었다. 글을 쓰지 않고서는 잡지를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막연하게 '편집자는 편집만 하겠지', '교정 보는 건 좋아하니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대학생 때부터 잡지사, 출판사 주변을 기웃거렸고 아르바이트생, 인턴사원, 신입사원 루트를 거쳐 잡지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일을 '잘'하려면 글도 잘 써야 했다. 적어도 안 쓸 수는 없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인 후, 편집 기획사 인턴으로 일하던 어느 일요일 밤에는 다음 날 출근해서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겁이나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흐르고 숱한 불면의 밤을 보내며 버티던 나는 정신 차려 보니 아무도 시키지 않은 글을 혼자 쓰고 있었다. 가끔 멍해지는 날이나 알 수 없는 감정이 치솟을 때면 워드 창을 켜고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썼다. 글을 쓰는 건지 생각을 토해내는 건지 구분하기 힘든 지저분한 글을 쓰고 혼자 읽었다.


아마도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왜 이러는가'와 같은 질문이 출몰했고 동시에 타인과 세상이 궁금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알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듣고 나니 내 얘기가 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그런 뫼비우스의 띠 같은 구조랄까.


이렇게 읽고 쓰기를 반복하면서 스스로를 정리하는 느낌이 들무렵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만났고 확신을 얻었다. 글쓰기는 만인에게 이로우며 고로 나도 글을 써도 된다는 확신. '써도 된다'는 안도감과 '잘 쓰고 싶다'는 내면의 목소리. 나는 이제야 '글을 잘 쓰고 싶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오늘도 쓴다. 잘 쓰고 싶다. 맡은 일을 잘하고 싶어서는 물론이고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을 잘 전하고 싶어서 쓴다. 내로라하는 작가들조차 왕도는 없다고 말하는 이 무시무시한 영역에 어쩌다 발을 담갔는지 때론 개탄스럽지만, 이젠 나갈 도리가 없다. "글쓰기는 실패 체험"이라는 은유 작가의 말을 지팡이 삼아 이 무겁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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