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21
인스타그램이 소소한 재미가 되어준다.
툭 내던지듯 말들과 사진을 던져놓고 내팽개쳐 두어도 그다지 그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 (비교적) 안들어 좋다. 가까운 이들의 일상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잘 지내고 있구나 하고. 무심한 성격 탓에 연락으로 안부를 자주 묻지 못하는 나는 이걸로 어깨너머 보는 것이 딱 적당하다.
그러다 보면 정말이지 지인들 이 외에도 여러 사람들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며칠 전 사진이 좋아서 팔로우를 했던 이가 글을 올렸다. 그 사람은 정말 많은 수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올린 사진들을 보다가 아래에 찍혀있는 '좋아요'의 숫자를 보곤, 저 많은 팔로워를 어떻게 왜 감당하고 사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그녀가 남긴 사진 아래의 글에 눈길이 갔다.
그녀는 그렇게 표현했다.
"구십 할"
순간 그 어떤 충격보다도 거센 충격을 나는 받는다. 구십 할. 구십 할. 구십 할.
세상 모든 이가 똑똑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중등교육 그 이하의 상황을 상대로부터 맞닥뜨리게 될 때 나는 당황스럽다. 다시 한 번 '구십 할'을 읽고는 사진 속의 그녀 얼굴을 다시 바라본다. 아무래도 정상인데.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그녀는 할푼리를 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기에 저리도 당당하게 수천명 앞에서 '구십 할'이라고 외칠 용기가 있는 것인지 새삼 궁금해졌다.
그녀의 사진이 좋아 팔로우를 시작한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나는 고민한다. 그런데 이내 나는 또 다른 고민을 한다.
왜 나는 이런 일로 지금 이 시간에 깊은 고민에 빠진 것인가. 그럴 수도 있는 것에 왜 그리도 예민하게 스스로에게 구는 것인가.
그래서 얻은 답이 있다면, 나는 그저 제대로 된 세상에 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