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나온 김에 말하겠다
너는 그때 너무했다
나를 운동장에 두고 가선 안됐다.
나는 죽음과 같이 기다렸다.
교실 커튼과 함께 기다렸다.
개교 이래 한 번도 빤 적 없는 커튼과.
과학실의 이상한 약품 냄새와 함께.
너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넌 그대로 자퇴했지
난 혼자 남아 소나무 옆에 기다렸다
소나무 꽃가루는 봄에 잔뜩 흩뿌렸다.
도망갈 길이 없었다
매점에 파는 빵도 별다른 스티커도 없었고
쉬는 시간에 하는 놀이도 별로 재미없었다
너가 없었다
너만 없었다
너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
나를 버리고 간 책임을
나는 죽음과 함께 너를 기다리고 있다
잠긴 옥상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철조망과 함께
너와의 조우를 기다리고 있다
너는 그대로 도망쳤지
이 지옥 속에 나를 두고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그 시절 나를 도와줄 어른은 없었다
기껏해야 제도권 교육 바깥의 어른들
창의적 재량시간의 어른들
귀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그 어른은 잘 지내고 있나
세상은 생각보다 볼품 없어서
나는 자주 실망하곤 했다
도움닫기를 하고 싶어도
도와줄 어른이 없다
부모는 아무 것도 몰랐다
논일 밭일에 열중할 뿐
나는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세상이고 싶었다
평범이고 싶었다
그런 나를 도와주지 않은 모든 어른들게 저주를 내리고
나는 논밭을 자전거로 질주한다
훔친 CD와 함께
훔친 영화와 함께
그대로 완벽한 숏과 함께
형이랑 같이 그늘 밑에 누웠을 때
그때 바닷바람은 완벽했었지
시원했었지
형은 기억 못하겠지
지금은 유튜버가 돼서 정신없을 테지
조회수와 상관 없는 얘기니까
안녕, 나의 소울 메이트
나와 상관 없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