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패션 브랜드의 현실적 고충에서 벗어나려면
얼마전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친한 언니를 만났다. 그는 혼자 디자인부터 제작, 판매까지 혼자 다 해내는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지만, 업무 로드가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피곤해했다. 그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나도 모르게 패션 산업에 대해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
그는 하나하나 정성스레 옷을 만든다. 옷을 공예품으로 보고 평가해도 모자르지 않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저렴한 대량생산 의류가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수입되기 때문에 비용에 있어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 물론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국내생산, 디자이너 핸드메이드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결과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생산과정에 대한 가치가 많이 희석된 것은 사실이다.
살아남기 위해 더 값싸고 효율적인 제작 방식을 고수하다보니, 일본만큼 장인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줄어드는 건 당연지사라고 생각한다. 요즘같은 시대에는 특히 경제가 어려우니 8세컨드, 자라(zara)처럼 디자인과 제작, 유통을 한번에 해내면서 빠르게 소비자 니즈를 충족하는 SPA 브랜드가 잘나간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즉석식품에 비유하고 싶다.
패션 산업은 유행이라는 명목으로 소비를 부추기면서 성장해왔다. SPA 브랜드는 유행소비에 최적화된 형태로 존재한다. 그들은 더 가격을 낮춰야, 더 많이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임금 착취와 환경오염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수익률 10%를 맞추기 어려운 패션산업은 죽어라 원가를 낮춰도 얼마 안남는다(수익률 업계 평균은 다른 산업군에 비해 20% 낮은, 8%라고 한다)
그 이유는 사치품에 속하는 의류 특성상 비싸면 사지 않는 소비자 심리와도 맞물려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정직하게 품질 좋은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점차 설 곳이 없다. 그렇다고 소비자에게 가격 부담을 지우자는 건 아니다.
똑똑한 소비자들에게 제품가격의 정당성을 납득시키면서 전반적인 의류 가격이 올라야 한다. 그래야 정직한 의류 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고, 고민이 더 깃든 좋은 디자인이 많아지고, 패션업게 종사자들이 열정페이가 아닌 정당한 페이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 명품, 또는 럭셔리 대신 디자이너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선택이다. 명품 브랜드를 갖고 싶은 욕망은 이해한다. 그러나 명품 브랜드는 사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국가사업으로, 그 나라를 먹여살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명품의 이미지는 헤리테지로 만들어지지만, 현실은 그저 브랜딩과 마케팅으로 뒤범벅된 과거의 명성에 불과하다. (명품백 원가가 8달러라고 해도 여전히 사고 싶은가?) 오히려 현재 헤리테지를 만들어가는 건 지금의 디자이너 브랜드이다. 힘들어하는 자국의 디자이너들이 이렇게 많은데, 사람들은 너무 쉽게 명품을 소비한다.
우리는 크리에이터들이 만들어낸 도파민 넘치는 다양한 컨텐츠를 소비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입는 옷은 어떨까. 밋밋한 옷을 소비하면 밋밋한 옷들이 더 많이 나오고, 재밌는 옷들을 소비하면 재밌는 옷들이 세상에 더 많이 나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더 창의적인 세상이 아닌가 묻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