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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꼬 Jun 03. 2023

호주 로드트립 part 02.

캠핑카에서 해낸 셀프 웨딩 촬영

이번 호주 여행에는 '셀프 웨딩 촬영' 이라는 미션이 함께 했다.

셀프 웨딩 촬영을 고민한 이유는 물론 웨딩 스튜디오의 터무니없이 비싼 값도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도 남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예쁜 척을 할 자신이 없었다...


인위적인 사진을 가질 바에 엉성해도 우리 손으로 찍은 자연스러운 사진이 좋지 않겠냐는 나의 의견에 오빠도 적극 공감해주었다. 그렇게 라이카, 삼각대, 자라에서 산 몇가지 원피스를 챙겨 호주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웨딩 촬영을 하기에 캠핑카의 환경은 정말 열악했다 ㅎㅎ

마땅한 드레스룸이 없어 옷이 자주 구겨졌고,

손질할 수 없는 내 머리는 자꾸만 왼쪽으로 삐쭉 뒤집어졌다.


그래도 드레스룸이 없었던 건 아니다. 없는 것 빼곤 있을 건 다 있는 우리의 만능 캠핑카.


화장대도 있음!


꽃은 모두 coles 에서 구입했다. 마땅한 화병이 없어 마시던 생수통을 잘라 만들었다. 더운 날씨에 꽃이 시들까 걱정했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강했다는. 백합은 시간이 지날수록 꽃을 하나씩 활짝 피워주었다.


비록 촬영 환경을 열악했으나,

함께 사진을 찍던 모든 순간이 로맨틱하고 황홀했다


나는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바다 도시, 바이런베이에서 찍은 웨딩 사진을 가장 아낀다.


아침이 밝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싱크대에서 생수로 서로 머리를 감겨준 뒤,

바다니까 가장 네추럴한 재질의 원피스를 꺼내입었고 모래알 같은 목걸이를 찼다.

신발은 모래에서 자꾸 푹푹 빠지니까 벗어던졌음.


저 멀리서 수영복을 입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가왔다.

본인들을 아침 수영 클럽 단원이라 소개하는 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에게 말을 붙인다.


결혼하냐, 허니문이냐, 몇살이냐, 왜이렇게 예쁘냐, 어느 나라에서 왔냐, 근데 정말 예쁘다


우리의 대답은 듣지 않고 다시 뛰는 이들, 웃겨 죽겠다.

이 세상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국적 불문 다 오지랖이 넓나봐.


갑자기 어떤 부부는 냅다 "더 글로리" 를 외친다. 무려 40년을 함께 살았다는 이 부부는 유독 우리를 좀 더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그 눈엔 기특하다는 마음도 있는 것 같고, 본인들의 첫 만남이 떠오르는 것도 같고,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감정이 담겨 있다.

4계절이 하루에 담겨있는 멜버른에 평생 살았고, 남은 노년기는 날 좋은 이 곳 바이런베이에서 보낼 거란다.


정말 잘 살아라는 행운이 담긴 축복을 가득 내려주고 기꺼이 사진도 함께 찍어준 이 부부가 너무 사랑스럽다. 아마 이 사진은 우리 집 가보가 되지 않을까. 싸움이 날 때면 이 사진을 보며 그래 내가 잘 해야지 하고 좋은 맘을 먹을 수 있을 듯 ㅎㅎ


사진 한 장 한 장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얼굴은 엉망진창이다.

머리는 제 멋대로 뻗쳐 있고, 내가 잘 나오면 오빠가 눈을 감았거나, 오빠가 잘 나오면 내가 등을 돌리는 등 전문가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한참 부족한 사진들이다.


그치만 우리 둘에게는 이 모든 사진들이 당시의 상황으로 데려가주는 듯 해 자꾸만 마음이 몽글 몽글해지는거지. 그러면 된 거 아닌가. 정말 성공적인 웨딩 촬영이었다.작은 액자로 뽑아 집 곳곳에 두어야지.


역시 무계획이 가장 완벽한 계획이다!

(이래서 P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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