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과 혐오를 넘어 이해와 공존으로
1.
덴마크에는 사람 도서관 (Human Library) 이 있다.
책이 아니라 '사람'을 대여해주는 이 도서관은
소수인종, 에이즈 환자, 이민자, 트렌스젠더 등 다양한 사람이 본인의 시간을 자원하여 운영된다고 한다.
전세계 80여개 나라에서 운영중이고, 한국에서도 운영 중이다. (참고 - 기사)
글로벌 기업 내에서도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인상깊었다. (참고 - 설립자 로니 에버겔의 인터뷰)
사람도서관의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라는 슬로건이 참 와닿았다.
'책' 은 표지가 아니라 내용을 직접 읽어보고 판단한다.
하지만 '사람책' 은 표지만 보고 너무 쉽게 판단하고 편견을 가지지 않는가 -
나는 '사람책' 의 내용을 읽어보는 방법이 '직간접적인 대화' 라고 생각한다.
사람도서관처럼 직접적인 대화가 아니더라도 저자의 책을 보면서 그들과 간접적으로 대화한다.
정신 질환을 가진 다양한 배경의 환자들을 만나면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특히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아래 편견들에 돌을 퐁당 던져준 사례를 적는다.
- 백인 우월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은 바뀌기 어려울 거다 (뭔가 뼛속 깊이 그런 사상이 있을 것 같은 느낌?)
--> 혐오의 문신을 몸에 가득 새겼지만, 사랑으로 품어주는 클리닉 직원들 (유색 인종) 을 만나 인종 차별주의에서 벗어난 지미.
- 정신 질환이 모두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의대 교수에게도 ...?
--> 전직 의대 교수인데 심각한 우울증, 알코올 중독 때문에 자살충동이 들어찾아오셨던 환자.
2.
https://brunch.co.kr/@psych/166
예전에 이 글을 보고 너무 좋은 글이라고 댓글을 단 적이 있다.
유아인 배우의 마약 소식에 대중은 그를 맹렬히 비난하고 비정상인으로 낙인찍기 바빴다.
나도 물론 그에게 실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혐오와 낙인 그 두개 밖에 없는 여론에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이 글은 말했다. 맹렬한 비난은 당장은 속시원하지만 우리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치료를 받고 재활을 해야할 당사자들을 음지에 숨게 만들고 중독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도덕적 비난보다는 '약물 중독 치료가 필요하겠구나' 라는 반응이 필요하다고.
이런 사건은 마약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는 걸 보여주는데, 전국에 두군데 밖에 없고 예산도 동결인 마약 중독 치료보호기관에 더 투자해야한다고.
근데 놀랍게도 이 책을 읽고 작가님 브런치 계정에 들어가보니 위 글은 작가님이 쓰신 것이였다.
(띠로링. 작가님 멋져요.)
어쨌든 작가님이 이 책에서도 낙인에 대해 잘 설명해주시는데,
낙인의 세가지 종류가 인상깊었다.
1. 사회적 낙인
정신 질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부정적이고 차별적인 시선
2. 자기 낙인, 내재화한 낙인
대중의 편견, 차별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개인이 자신이 앓는 질환에 수치심을 느끼는 등 부정적인 태도를 스스로 체화하는 것
3. 제도적 낙인
기업이나 정부 같은 대규모 조직에서 일어나는 정책적 차별
신입사원 선발 과정에서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등.
최근 '파친코' 를 읽었는데, 이 책에는 위의 세가지 낙인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잘나온다.
낙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으면 파친코를 추천한다.
이 책을 읽을 무렵, 한달만에 4-5 kg 가 찌면서 부정적인 자기 낙인이 심했다.
'먹는 것도 컨트롤하지 못하면서 어떤 걸 컨트롤할 수 있겠어'
하지만 책에서 '조울증은 저의 일부일 뿐 저라는 사람을 규정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 환자를 보면서
내가 겪고 있는 약간의 식이장애는 나의 일부일 뿐 나라는 사람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계속 되새겼다.
(지금은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자기 낙인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그건 너의 일부일 뿐 너라는 사람을 규정하지 않는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엄청 큰 힘이 되는 위로인 것 같다.
위의 세가지 낙인 중, 자기 낙인이 가장 지옥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에서 오는 낙인과 달리, 항상 내 머릿속에서 낙인의 말들이 울리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과 이 책을 보며 예전에 부정적인 자기 낙인으로 힘들어하던 친구를 이해하게 되었고
(나는 너를 이제 98프로 이해한다고 말함)
파친코 등장인물인 노아를 이해하게 되었다.
책의 부제처럼 '낙인과 혐오를 넘어 이해와 공존으로 가는 사회'를 위해
나의 자리에서부터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라는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의 반경에 있는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다양한 책들로 무장하여 이해와 공감의 폭을 더 넓혀야겠다.
(개인적으로 소설책이 공감능력 향상에 엄청 도움이 많이 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