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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Mar 03. 2019

[주간에세이] 미세먼지를 마시며

주간BD, 3월 1주

그야말로 숨쉬기 힘든 시절이다. 그래도 지난여름엔 미세먼지가 창궐하면 날씨라도 덜 더웠는데, 이번 겨울엔 그런 거 없다. 날이 춥든 덜 춥든 미세먼지는 건재하다. 미세먼지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대기 질 어플의 배경색이 진해질수록 내 분노 수치도 비례하게 증가한다. 단지 먼지가 많아져 숨쉬기 불편해지는 정도를 넘어 내 행복추구권을 침해당하는 느낌이다. 일조권, 주거권...등 헌법에서조차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 이 중 가장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권리를 꼽는다면 .... 호흡권. 숨 쉴 권리가 아닐까. 요즘 같은 '미세먼지 나쁨의 일상화 시대'에는 내 호흡권이 심각하게 침해받는 것 같아 매우 불쾌하고 짜증 이빠이다. 햇볕이 안 들어 짜증 나면 볕이 잘 드는 양지로 나가 광합성을 할 수라도 있지, 미세먼지로 침해받는 내 호흡권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으며, 어떻게 쟁취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저 '최악'은 진짜 최악이다. 숨이 턱 막히게 한다.

미세먼지를 들숨으로 들이마시며 답답한 건 단지 미세하고 초미세한 먼지가 내 호흡기를 타고 폐 속을 파고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상의 답답함은 이런 답답함과 속상함을 어디 하소연하고 따질 때가 없다는 데 있다. 분노의 충분조건?은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을 포함한다. 내 호흡권을 뺏어간 분노를 어디에 표출할 수 있을까. 대륙의 동부 해안가에 자꾸만 공장을 이전시킨다는 중국과 공산당에? 그런 중국에 큰소리 한번 못 치고 그저 밀려오는 먼지바람을 동방 예의지국답게 맞이하는 한국 정부와 대통령에? 환경에 관심이나 있긴 한 건지 궁금한 환경부에? 아니면, 그런 환경부와 환경을 잘 감시하는지 의문인 시민단체들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분노의 대상이 모두 충분치도 적절치 도 않다. 분노를 표출한 대상이 분명하지 않으니 분노는 짜증과 답답함으로 발효되어 더 고약해진다.

미세먼지 사태는 책임을 묻기 애매하다는 점(물론 중국에서 오는 미세먼지가 대부분이지만 단순히 공장 딴 데다 지어라 할 수도 없기에...), 호전시키는 방법이 그저 대기순환뿐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점에서 재난과 같다. 물론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이자 인간이 자처한 환경오염, 대기오염의 결과이지만, 그저 숨 쉴 권리, 소박한 호흡권을 기대하는 한 개인에게는 재난이다. 지진과 홍수, 태풍 피해의 원인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 국가로 규정할 수 없듯이 미세먼지로 인한 호흡권의 박탈은 무심한 하늘을 바라보는 것 말고 딱히 어디 하소연할 곳 없는 재난과 같다. (그렇다고 국가와 정부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눈의 하트가 내 얄밉기만 하다.

재난의 미세먼지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중국과 정부와 시민단체에 강력한 답 없는 항의를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디젤차를 전기차로 바꾸어 대기 환경에 조금이라도 일조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소극적으로 공기청정기 여러 대 구매해서 빵빵하게 틀고, 외출할 때마다 마스크 바꿔 끼며 내 호흡권 내가 방어해야 하는 것일까.(내가 착용하는 KF94 짜리 마스크는 오히려 호흡을 힘들게 해 호흡권 박탈 측면에선 비슷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 당장의 해결책도, 적절한 분노의 대상도, 효과적인 소극적 대처 방법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단지, 인간은 상대적 인식을 좋아하는 동물이라 그런지 미세먼지의 심각한 상황에서조차 상대성의 비교로 만족해한다. 미세먼지가 최악이었던 3.1절 100주년 기념행사 날. 중계 화면을 보며 나라님도 똑같이 이 최악의 미세, 초미세 먼지를 마스크 없이 방독면 없이 들이마신다는 사실에 안심 안도하고, 보통 때 같으면 그저 그런 꾸리꾸리 한 날씨도 미세먼지 어플이 녹색으로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 '날씨 좋네?!' 속으로 외친다. 인간의 상대성을 추구하는 습성은 미세먼지의 공포와 불만족 속에서도 안심과 만족을 찾는 집요함을 발휘한다.   

올리브영에서 미세먼지 매우 좋음 날의 공기를 판매한다면 지금 당장 살 용의가 있다. 돈 버는 이유가 별거 있겠나. 맑은 공기를 후우욱 들이켜고 훅 하고 내뱉고 싶은 날이다.  

이런 하늘을 매일 보고 싶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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