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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Mar 20. 2019

[주간에세이] 민방위훈련을 받으며

주간BD, 3월 3주

나른한 초봄 오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회사문을 나왔다. 국가의 부름이 이토록 반가운 적이 있던가. 일 년에 한 번 있는 민방위 교육훈련(이라 읽고 '생사 확인 소집 훈련'이라 부른다)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시간 맞춰 구민 회관에 도착했다. 올해부턴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출석 여부를 QR코드로 인증한단다. 시간도 멈추게 한다는 국방부 시계도(민방위훈련은 구청 소관) ICT 강국의 대세 앞에서는 제 속도로 가나 보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가기 위해 시간에 딱 맞춰 들어간 강당에는 익숙한 아저씨들의 뒤통수와 홀아비 냄새가 민방위 3년 차 아저씨를 반긴다. '다들 용케 살아 있었구나.' 일 년에 한 번이지만 남고 교실 같은 불쾌한 냄새는 익숙하다.
 
예비군들이 훈련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몸이 무거워지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겪듯, 민방위 훈련장의 대원들은 강당 의자에 앉으면서부터 조금 과장 보태 산송장이 된다. 강사가 뭐라 외치든 제 할 일 하거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눈을 감고 명상을 취하는 등 모두 무아지경이다. 신기한 일이다. 누군가 민방위훈련에서 경청하는 것은 마치 운전면허 필기시험에서 100점 맞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라고 가르쳐 준 것 마냥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각자 할 일을 한다. 모범대원과 거리가 먼 나도 민방위 3년 차답게 몰래 한쪽에 이어폰을 꼽고 할 일을 한다.

다리를 자연스레 꼬고 책을 보다 허리가 아파 자세를 고치며 잠시 책을 덮었다. 평소 같았으면 귀가 아플 정도 강사 목소리도 자연 음소거 된 무아지경의 시간. 문득 강당에 산송장으로 앉아 있는 수백 명의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츄리닝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늘어진 트레이닝복, 축 처진 어깨. 구술 동자처럼 불뚝 나온 뱃살까지. 영락없는 수백 명의 아재였다.

아니, 어쩌다 다들 이런 완연하고 숙성된 아저씨가 되었나. 언제 이렇게 다들 나이가 먹었나.

 마음으로 놀라면서 그 속에 이미 핵인싸가 된 나의 존재도 자각했다. 그곳에는 이십 대 언젠가,
'맛이 간 얼굴에 푸석한 피부. 배가 불뚝 나오면 아저씨 빼박이겠지' 라고 생각했던 그 아저씨들이 대원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모여 있었다. 민방위훈련으로 출근하지 않던 선배를 부럽게 바라보던 사회 초년 시절,
'민방위훈련 가는 사람은 아저씨'로 규정한 내가 스스로를 아재의 범위에 가둬버린 것 같아 슬퍼졌다. 나도 그 아저씨들 중 한 명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학생에서 아저씨로, 풋풋함에서 칙칙함으로 바뀐 내 겉가죽도 자체도 슬프거니와 푸석해진 내 얼굴만큼 바뀌지 않은 내 안의 것들은 더욱 서글프게 했다.        

자세히 다시 둘러보았다. 이번엔 나를 망각한 안타까움과 나를 자각한 슬픔이 아닌 같은 아저씨로서의 연대와 연민의 마음으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했던가. 두 번째 보니 아저씨는 아저씬데 한편으론 어린애 같았다. 나이는 다들 먹었는데 나이만 먹은, 세월만 꿀꺽 삼킨 어른이들.

이 사람들 그렇게 홀아비 냄새 아저씨 냄새 풍기더니 결국 다들 순두부같이 쉽게 부서질 것 같은 이들이라니.


 짠하면서도 애틋했다. 다들 바쁘게 살 텐데 국가가 호출하니 비둘기 모이에 홀리듯 쪼르르 모인 것도, 초점 없는 눈동자로 무념무상 재난 시 대처요령 강습을 듣는 것도, 고객 푹 숙이고 스마트폰 게임 삼매경에 빠진 것도. 그냥 다 짠했다. 20대를 넘어 30대 훌쩍 넘은 시간 동안 마음처럼 성숙하고 성장한 건 없는데 성실히 매년 나이만 먹은 서러움도, 그런 설움 겉으로 내색하는 게 창피해 속으로 삭혀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무게감도 자연스레 느껴졌다.

이런저런 감상에 잠겨 있는 사이 어느새 민방위훈련의 꽃이자 퇴근?의 마지막 관문 CPR 차례가 되었다. CPR 실습을 위해 모형물에 깍지 낀 손을 살포시 얹혀 놓았다. 하나, 둘, 셋. 구호를 외치며 5cm 깊이로 심장 압박을 시작했다. 팔이 없는 상반신의 CPR 모형물을 힘껏 누르며 속으로 생각했다. '심장 멎은 생명을 구하면 다 어른인가.'

민방위의 꽃은 CPR 이다.

수년 전 싸이월드 게시판에 '나는 언제쯤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30대엔 되는가. 40대에 되는가.' 하는 푸념을 적어 놓은 적이 있는데, 이미 그 30대의 중간에 와 있다. 성숙은커녕 20대 언젠가 보다 더 작아지고 좁아진 것은 왜 인지.

문득 전에 본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님의 말이 생각나 안도감과 함께 묘한 쓸쓸함이 들었다.

내가 살면서 제일 황당한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직업을 갖고 애를 낳아 키우면서도, 옛날 보았던 어른들처럼 내가 우람하지도 단단하지도 못하고 늘 허약할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늙어버렸다. 준비만 하다가.   -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님


나만 진짜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초조함과 패배감을 느낀 건 아니라는 안도감이 생기면서도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스스로 성숙하다 자부할 수 있는 성숙의 자리에는 갈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서글픔도 들었다.

금세 실습은 끝났고, 퇴장도 QR코드로 마무리하며 귀가했다. 귀가의 기쁨에 어른이들은 담배를 태워대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이른 귀가로 발걸음이 가벼웠지만 내년의 민방위훈련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하는 걱정에 기쁘지만은 않았다. 이러다가, 준비만 하다가, 걱정만 하다가 갑자기 늙어버리면 어떡하나.  

지혜로운 어른 같은 황현산 선생님도 어른인 느낌이 없었다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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