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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Oct 14. 2023

직속상사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I'm so proud of you!



그는 나의 직속리더였다. 유독 어려워하며 준비한 발표를 모두 마쳤을 때, 따로 전화를 하여 Well done과 I'm so proud of you를 확신에 찬 목소리로 거듭 말씀해 주시던 분. 이직 후 출근 첫날. 회사 로비에서 나를 반가운 미소로 맞이해 주시던 분이셨다. 그 후로 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점심시간 후 졸음이 나른하게 찾아오는 오후 2시 반이면, 커피를 마시자고 회사 밖으로 데려가 햇살 아래든, 바람이 불든 함께 커피 한잔을 하며 우리는 가족 이야기, 근황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긍정적 피드백을 많이 해주셨고, 좋은 이야기라면 어디서 들었다며 전해주는 일 역시 놓치지 않으셨다. 행여나 내가 한 일의 공이 내게 돌아오지 않을까 봐 윗선으로 가는 이메일이나 회의 때에도 '미니가 이렇게 해주어서'라는 말을 꼭 짚어하시던 분.


업무적인 면에서도, 인간적인 면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보기 드문 어른이었다. 사실 현재 함께 일하는 대부분의 팀원이 감사하게도 그렇다. 이민 후 10여 년 동안 나의 기본 권리를 위해 싸우거나, 뒤통수를 맞거나, 혹은 주눅 들어가며 분투하듯 살아온 내게, 갑자기 따뜻한 지붕이 생긴 느낌이었다. 바깥세상에도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다고, 사회에 나와 어른다운 어른을 만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가던 차였다.


부족한 나를, 자꾸만 빛나도록 말해주고 격려해 주던, 받은 것만 수두룩히 생각나는 그분의 암 선고는 우리 팀 모두에게도 충격이었다. 동료의 아버지가 오래전 같은 종류의 암을 진단받고 완치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아니라, 통원하며 항암치료를 한다고 하여 6개월의 과정이 끝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그간 2주에 한번, 한 달에 한번 드문드문 안부 인사를 전하며 무조건 뭐라도 먹고 힘내야 한다는 말만 하며 지내던 어느 날. 팀 미팅을 하던 아침에 그분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락을 해도 받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메시지를 보내보라고.


가족 중 한 분에게서 거의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의미의 답장을 받았다. 그리고 두어 시간이 지나 부고 소식을 듣게 된다. 햇살이 쏟아지던 9월이었다.


 



27년 동안 한 회사에서 계시면서도 딱 이만큼의 책임감이 좋다며 본인의 자리를 좋아하셨다.


밤늦게 미팅할 때도 많고 임원진 오면 바쁘지 않아요? 저는 제 자리가 딱 좋은 것 같은데요.

아니야. 어쩔 땐 미니씨가 나보다 일을 더 열심히 할 때도 있어요. 내 자리가 제일 편해.


서로 자기 자리가 제일이라며 커피를 마시며 함께 키득거리던 때가 생각난다. 아이 둘 키우며, 딱히 회사 안에서 어딘가에 도달해야겠다는 목표가 없는 나의 모습이 불안하던 때. 남들이 말하는 높은 자리 말고, 내가 삶의 발란스를 맞춰가며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 역시 용기라는 것을 배워가던 때였다.


그분이 떠나신 지금은, 그의 자리가 어디였는지는 삶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 본인에게 가장 맞는 방식으로 삶을 채우다 가셨다는 사실이, 남아있는 사람에게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제야 겨우 마음을 추스른다. 아직도 문득문득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생경하게 다가오지만, 이것도 곧 익숙해질 것이다. 사람에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할 부분을 선물해 주셨다. 좋은 분은 가시고 나서도 마음에 남는다.


그분의 삶에, 잠시라도 스칠 수 있어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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