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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May 11. 2024

여보 일단 나만 먼저 다녀볼게?

마에스트라 장한나의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5번

장한나가 시드니에?


어머 이건 가야 해. 티켓 페이지를 당장 클릭한다.


비슷한 또래라 그랬을까. 크면서 항상 그녀의 뉴스나 기사를 접해왔다. 어렸을 때부터 이미 거장과 나란히 세계 무대를 누리던 첼로 신동이 갑자기 하버드에서 철학을 공부한다고 을 때는 음악 외의 학문에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하는 독특한 행보가 좋았다. 그것도 철학이라니. 내겐 한없이 심오한 분야지만 장한나라면 철학을 공부하면서도 음악과의 접점을 찾아 음악인으로서의 깊이를 더 할 것만 같았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지휘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사에서는 그녀의 지휘하는 모습이 잠시 찍힌 영상이 있었는데, 온몸에서 곡을 향한 애착과 열정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세계 최고의 첼리스트로 교육자로서 입지를 다질 수도 있었을 텐데, 세상을 탐구하고 본인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모습이 멋졌다.


한 번 사는 인생, 이렇게 사는 거지.


어린 나이부터 열렬하고 심도 있게 연습하여 정상에 도달했을 것이다. 고작 동네 학원에서 피아노나 치던 보통의 나는 가늠할 수 없을 강인함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하루도 게을리할 수 없는 연습으로 그녀만의 시간을 채우는 동안, 신동, 천재라는 수식어는 어쩌면 치열한 노력이 담긴 시간을 쉬이 덮어버리는 단어이기도 했고, 동시에 엄청난 무게를 담은 단어이기도 했을지 모른다.


성인이 되면서 본인이 살던 세상 너머를 향해 기꺼이 문을 여는 용기는 그녀의 건강하고 단단한 마인드를 오롯이 보여주었다. 


언제 이 사람이 지휘하는 연주를 볼 수는 있을까. 여느 때처럼 뉴스로 접하는 먼 곳의 사람이라 생각하며 시간이 흘렀다.


인스타그램에 피아노 계정이 있어 연주회 정보가 피드 사이에 떴을 것이다. 장한나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그것도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5번이라니. 대학교 때 처음 듣고는 한동안 메인 주제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던 곡이었다.


티켓팅 홈페이지에 바로 들어가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나 이거 꼭 가야 돼.


양가 가족이 모두 다른 나라에 계시므로 연주회를 가려면 남편이 아이들이 봐주어야 했다. 흔쾌히 다녀오라고 해주어 그 자리에서 티켓을 끊었다. 물론 지휘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합창석으로. 피아노 협주곡이 있는 것을 감안하여 피아노의 위치를 상상해 보고 가장 좋을 것 같은 자리를 선택했다.


합창석은 단원들과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 들어 선호한다. 그들이 바라보고 넘기는 악보, 악기를 향해 몸짓하는 지휘자, 관객을 바라보는 연주자의 시각 등등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흥미로운 포인트가 많은 자리이기도 하다.


거두절미하고 장한나 지휘의 연주는 합창석에서 보아야 한다(!) 음악을 고스란히 담은 듯한 그녀의 생동감 있는 표정과 몸짓을 직관할 수 있으니 말이다. 프리미엄 관객석이라도 지휘자의 등을 바라보면 공연의 반 밖에 보지 않은 것이라고 감히 이곳에 끄적인다.



음표 하나하나 날아다니는 듯 생동감 있던 Overture (Glinka - Ruslan and Ludmila).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은 spotify로 들었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번 공연 프로그램으로 알게 되어 미리 들어보면서 조금 난해하다고 느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연주를 관람하면서 곡이 매력적으로 들리는 마법을 경험했다.


차이콥 심포니 5번. 15여 년 전 처음 듣고는 단숨에 사로잡혔던 1악장 바순 솔로를 숨죽여 들었다. 그녀는 지휘하는 동안 관악기 솔로가 나올 때마다 해당 악기 연주자에게 애정 가득한 눈빛을 건네며 손짓했다. 무엇보다 1악장이 끝나가는 마지막 부분 콘트라베이스의 묵직한 소리가 강조되어 좋았다. 이때 지휘도 계속 아래를 향하여 꽂는 모습이었는데,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만의 황량하고 슬픈 분위기가 더 깊이 다가왔다.


바순 솔로 파트


표정에 한가득, 몸짓과 손 끝까지 에너지를 담아 음악을 그려내는 동안 그녀는 때로는 카리스마 있고 때로는 부드럽게, 심지어 때로는 장난스럽고 개구진 표정으로 음악을 표현하며 합창석 쪽 관객들에게 미소를 선사했다. 관객들로 꽉 찼던 콘서트홀이 그녀만의 청명한 기운과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로 충만해졌다.




2시간가량 진행된 연주회를 마친 후 집에 오니 아이들은 이미 꿈나라였다. 남편과 강아지만 겨우 눈을 뜨고 기다리고 있었다. 클래식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남편이지만 간혹 내가 집에서 뚱땅거리는 피아노 소리를 좋다고 이야기해주고,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공연을 함께 하며 은근히 즐기던 사람이었다.


당신도 너무 좋아했을 공연이라고, 첫 곡 시작부터 당신 생각이 났다고 하니 아이들이 커서 혼자 있을 수 있게 되면 같이 다니자고 약속한다.


덕분에 근사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공연에 대한 감동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일단 여보. 


그럼 아이들 다 크기 전까지는 일단 나만 좀 다녀볼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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