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의 3가지 단편을 합쳐 각색한 작품이다.
영화는 히로시마 연극제의 총 연출 책임자인 유스케와 그의 드라이버로 고용된 미사키의 성장담을 절제된 호흡으로 풀어낸다.
아내 오토의 외도를 알면서도 미처 대면할 용기가 없었던 주인공 가후쿠 유스케는 아내로부터 진실을 듣지 못한 채 아내의 죽음을 맞이한다.
히로시마 연극제 총 연출 책임자였던 유스케는 연극제 규정 상 본인의 차를 직접 운전하지 못하게 된다. 이에 숙소까지 1시간 거리를 드라이버인 미사키가 매일 운전을 도맡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차츰 유대를 쌓고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영화 후반부 유스케가 타카츠키(오토의 내연남)의 사고로 인하여 연극의 주인공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 오는데, 유스케는 아내에 대한 상처로 주인공을 맡을 수 있을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유스케는 미사키와 함께 미사키의 고향 홋카이도로 떠난다.
미사키는 산사태로 무너진 집의 잔해 앞에서 본인을 학대하던 엄마를 산사태에서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았고, 엄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음을 고백한다. 미사키는 산사태를 빠져나오면서 생긴 흉터를 일부로 치료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녀가 엄마에 대한 죄책감을 표현하고 기억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하얀 설경 속에서 유스케도 본인은 더 상처받아야 했고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용기 내어 오토와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고 미사키에게 털어놓는다. 미사키와의 대화를 통해 유스케도 마침내 진실을 대면할 용기를 배우게 되고 위안을 얻는다.
영화는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고 살아가는 원동력임을 강조한다. 영화 내내 다음과 같은 연극의 대사 일부가 언급이 된다.
진실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그렇게 두렵진 않다. 가장 두려운 것은 그걸 모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죽은 아내 오토의 내연남인 타카츠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자기 스스로를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자기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만큼 힘겨운 것도 드물다. 애써 잘 눌러 넣은 과거의 상처들, 새롭게 일을 벌여서 오게 될 번거로움과 예측 불가능함과 맞서야 한다.
그러나 영화는 우리가 진실을 마주해야 하고 나의 심연을 대면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영화를 러닝 타임 3시간에 걸친 드라이브로 생각해본다면, 그 여정의 끝에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있다.
그러나 진실을 외면하지 말자는 메시지는 많은 영화에서 다뤘던 주제이기도 하고 (i.e. 몬스터 콜) 노래에서도 많이 다뤄져(i.e. 로이킴의 ‘살아가는 거야’) 메시지 자체로만 보면 새롭지는 않다. 또한 상처를 가진 주인공들이 홋카이도의 설경 속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각성하는 부분은 러브레터 및 윤희에게와 설정이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보편적인 이야기를 감각적인 연출로 러닝타임 3시간 동안 묵묵하게 밀어붙이고 빌드업을 하는 것도 감독의 뛰어난 역량임은 분명하다.
유스케는 15년간 빨간색 사브 900 (이미 단종된 지 오래된 차량이다)을 운전해왔으며, 운전 중 연극 대사를 숙지해온다. 애착이 강한 차량이기 때문에 유스케는 미사키가 본인의 차를 운전해야 하는 연극제의 규칙에 반발하며 그녀의 운전 실력을 테스트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동차를 통해 둘은 가까워진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영화에서 유스케의 자동차는 등장인물과도 같은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자동차는 묵묵하게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등장인물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수단이 된다.(영화 중간 자동차에서 멀어지는 타카츠키를 잡는 컷이 있는데, 마치 자동차가 직접 바라보는 시선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자동차에는 유스케의 연극 준비를 위해, 죽은 아내 오토가 녹음해 둔 연극 대사들의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된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나에게 아내 오토는 자동차의 Auto를 상징하는 것만 같다). 이렇듯 자동차는 오토의 세계이기도 하다.
과거의 세월과 오토의 흔적이 가득한 자동차에서 결국 유스케는 마음의 방향을 잡아간다. 미사키에게 차츰 마음을 열어가고 친구가 되어 간다. 아내의 외도 상대였던 타카츠키가 차에서 내린 후 유스케가 처음으로 조수석으로 앉으면서 미사키와 얘기를 하고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한다. 차를 몹시 아끼는 유스케가 차에서 담배를 피우라고 말하는 부분은 미사키에 대한 신뢰와 함께 두 사람이 서로를 위로해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자동차 루프를 열고 담뱃재를 털며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연대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여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영화에서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내를 변함없이 사랑하지만 동시에 아내의 외도에 서운함을 느끼는 유스케, 남편을 사랑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외도를 하며 솔직한 본인의 감정에 충실한 오토, 스스럼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는 타카츠키, 그리고 수어로 대화하는 한국인 연극배우 부부들의 사랑까지.
등장인물들의 제각각 사랑의 모습을 보니 사랑은 물과 같아 어느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떤 그릇에 담기든 그 그릇 모양에 맞게 정의되는 것이 사랑은 아닐까. 특히 미사키의 대사 중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다양한 사람들과의 사랑을 원했던 오토 씨는 그 어떤 모순도 없어 보인다”는 말은 사랑의 본연의 개념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불편한 진실들을 눈 빤히 뜨고 대면할 용기. 나에게는 마치 인생 과제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진실을 마주하고 참담함 속에서도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는 삶의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곱씹고 싶다. 영화에 등장하는 연극 바냐 아저씨 결말 부분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해본다.
어떡하겠어요. 살아야죠! 바냐 외삼촌, 우리 살도록 해요. 길고도 숱한 낮과 기나긴 밤들을 살아나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시련을 참을성 있게 견디도록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