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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엄마도 조금 힘들었어

엄마의일기


탁 트인 고어스의 전경과 할슈타트의 고요함을 느끼고 나니 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것 같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이번 프라하 여행을 통해 어느정도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든다. 힘들었다. 첫째 딸아이를 케어하는 일도 충분히 힘든데, 만삭의 몸으로 회사와 집안일까지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임산부를 위한 복지도 잘 되어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배려를 많이 해 준 덕분에 업무 스트레스가 큰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 마음이 힘들었다. 


임산부들은 2시간 단축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오후 4시가 되면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임산부에게 주어지는 권리였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사실 나는 우리 회사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임산부 단축근무제도’의 첫 수혜자이다. 첫째 아이 때 조산기가 있었는데, 이 제도 덕에 크게 무리하지 않고 회사를 다닐 수 있 었다. 그리고 둘째 임신 역시 이 제도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두번째여서 괜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군다나 팀에는 이미 2명이나 육아휴직 중이었고, 늘어나는 회사 구성원 수에 비해 일손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한 명이 두 세명의 몫을 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점점 쳐지는 컨디션과 오후 4시 조기퇴근은 셀프 눈치를 만들어내기 딱 좋았다.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내 마음은 힘들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뛰었다. 피해되고 싶지 않았고,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가능한 회사에 일찍 출근하려 했고, 퇴근 전에는 쉬는 틈 없이 집중하려 애썼다. 그리고 나의 중요 한 업무 중 하나는 임신한 구성원들을 챙기는 것이었는데, 내 마음 같지 않은 몸으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특별히 더 마음이 쓰였다. 졸음이 쏟아지거나 배가 뭉칠 때는 휴게실에서 충분히 쉬며 마사지도 받으라고 임신한 구성원들 을 다독이곤 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임신기간 중에 휴게실에서 쉬어본 적이 없다. 아이러니하지만 책임감과 미안함에서였다. 상황이 그러했다. 


회사에서 그렇게 긴장하고 애쓰며 시간을 보내다, 퇴근 후에는 육아출근을 했다. 남편이 집안일과 육아를 함께 해줘서 정말 많은 힘이 되었지만, 엄마만 해야하는 일들이 가득했다. 엄마 배가 점점 불러올수록 어리광이 늘어나는 딸 아이를 케어하느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두배는 더 힘들었다. 특히 딸 아이가 안 아달라고 울 때가 많았는데, 그녀의 정서적 안정감을 위해 만삭의 배 위에 딸을 걸치고 안아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덕에 나의 허리는 내것이 아닌지가 오래다. 출산을 한 뒤 그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동생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힘든 딸은 안 그래 도 감수성이 4살의 것이 아닌데다가 질투가 극에 달했다. 몰래 동생을 밟는가 하면, 응애응애 아기가 되는 퇴행을 보였다. 벽을 보고 홀로 구슬픈 가사를 지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더 문제였다. 둘째에 대한 첫째의 질투나 반응에 대해 이해하고, 첫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을 보여주 기로 결심했으나 마음만 그러했고 나의 행동은 달랐다. 처음에는 참아 주다 버럭 화내기 일쑤였고, 못 참을 때는 엉덩이를 때리기도 했다. 그런 날은 밤에 첫째를 쓰다듬으며 울었다. 그럴거면서 왜 화를 못참고 아이에게 화를 냈던 것인지... 내가 참 미워지는 하루하루였다. 나의 자존감은 점점 낮아졌고,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다며 자책했다. 첫째 딸도 이제 겨우 4살, 아직 36개월도 안 된 어린 아이인데 왜 나는 철든 아이 대하듯 하는 것일까. 



태동을 느낄때마다

이 아이가 자신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나와는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네가 내 배 속에 있을 때조차도,
너와 내가 한 몸이었을 때조차도 넌 나와 ‘다른 개체’였는데, 

넌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적이 없는데,
어쩌자고 난 자꾸 네가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답답해하는 걸까. 


아이의 개성을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는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아이의 행동에 내 마음이 불편할 때
이것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내 취향이 달라서 싫은 것인지
구분할 줄 아는 성숙함은 대체 어디가면 살 수 있을까. 


- 장수연,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중에서 - 



작년 초 이 책을 읽다 격하게 공감하여, 메모장에 옮겨둔 글귀다. 아이의 행동이 정말 잘 못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 이 그저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어서 짜증이 나고 화가 날 때가 많았다. 아이는 이것저것 널부러뜨려 놓고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는 정리정돈 하며 놀아주기를 바랬다. 내 기준에서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 5권이라면, 딸의 기준은 10권이 많은 것이었다. 내가 일에 지쳐 고단할 때나, 만삭의 몸으로 점점 숨차 오를 때는 엄마가 홀로 쉴 수 있게 배려해주기를 바랬다. 


이것봐 엄마, 14살이 아니라 고작 4살이라고 4살! 


인스타 피드에 올라오는 엄마들은 다 좋은 엄마인 것 같았다. 나는 잘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육아재능도 끈기도 없는 엄마인 것 같아 매일이 우울했다. 애쓴다고 애쓰는 날에는 마음이 너무 힘들었고, 애썼는데 아이가 따라주지 않을 때는 다시 버럭 화가 났다. 그러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 기분이 안 좋아요? 왜그래요?” “엄마, 화내지 마세요. 예쁘게 말해주세요.” 


얼굴이 뜨거워졌다. 마음이 시큰거렸다. 내가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어린시절 무섭게 엄한 엄마 때문에 눈치보고 마음앓이 했던 그때의 내가 생각이 났다. 4살 딸아이의 얼굴에서, 그 옛날 어린 내가 보였다. 내가 싫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딸아이에게 하고 있었다. 



완벽해야 했던 외동딸이어서 힘들었던 것들을 딸에게 똑같이 요구하고 있었다. 내가 받아온 애정에는 조건 없는 사랑과 함께 뭐든지 잘하는 딸이어야만 받을 수 있는 사랑이 있었다. 어렸지만 부담이었고 힘들었다.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잘 못하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잘 못해도 너를 사랑하고, 실수해도 넌 잘 할 수 있다며 안아주고 싶다. 


이를 꽉 물고 나를 쳐다보는 엄마의 눈은 무서웠다. 눈물콧물 흘리며 잘못 했다고 비는 나의 손목을 부여잡고 어둑한 곳으로 끌고 가는 그 길은 무서웠다. 끌려가는 길에 벗겨진 신발과 더러워진 나의 발은 나의 환상인지 실제인지 구분은 가지 않는다. 그러나 내게는 그러한 잔상이 남아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아이를 다루는 법을 몰라서 그랬겠지하며 위로해보지만 아픈 마음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나의 아이에게는 무서운 눈의 엄마가 아닌, 다정하고 따뜻한 엄마의 표정을 남겨 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딸 아이의 말에 나는 꼬옥 껴안아줬다.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내 마음이 불편할 때 아이의 행동이 잘 못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내 취향이 아닌 행동인지 구별하려 애쓴다. 또 화가 날 때 크게 심호흡을 3번 하고 이야기 한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이지만, 정말 효과가 있다. 그리고 힘이 들 때는, 엄마가 무엇 때문에 힘이들고 속상한지 차분하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 딸이 그 말을 이해할리 없지만, 엄마의 마음은 조금 느끼는듯 했다. ‘아, 우리 엄마가 조금 속상한가 보구나.’ 이 정도로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됐다. 내가 화를 덜 내니, 아이도 짜증을 덜 낸다. 내가 더 많은 사랑을 주니, 동생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나도 조금씩 두 아이의 엄마가 되 어가고 있듯, 나의 딸도 조금씩 누나가 되는 중이다. 



너와 함께 엄마가 되어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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